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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lowalk

슬로워크 10주년. '오래된 미래, 복잡한 반성'

저는 슬로워크 창업자 임의균입니다. 내부에서는 ‘의균님'이라 부르고 몇몇은 ‘소사'라고 부르며 외부에서는 ‘대표'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면 인터뷰나 강의를 통해 슬로워크를 창업하게 된 계기나 생각을 단편적으로 말씀드린 적은 있지만 슬로워크 블로그에는 이번에 처음 씁니다. 회사 창립 10주년을 맞아 제가 한 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업,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가끔 제가 어떤 계기로 창업했는지조차 가물가물 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 발로 한창 총선연대(국회의원 낙선운동) 준비 중인 참여연대에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고 저는 문화사업국이라는 곳에서 자원활동가로 일을 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전시기획을 통해 작가들에게 그림을 기부받고 전시회를 열어서 수익을 만드는 일이였습니다. 일은 재미있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배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문화사업국에서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게 되었고 직간접적으로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미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라는 제안에 엉겁결에 홈페이지에 대해 공부하면서 밤샘을 해가며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첫번째 작업한 디자인입니다. 어느날 제가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그리고 입소문이 났는지 비영리단체들의 일이 계속해서 들어옵니다. 그 입소문이라는 게 제가 디자인을 잘해서가 아니라 비용이 저렴하거나 무료로 해주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슬로워크 전신인 ‘스튜디오OO'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사업자를 내게 됩니다.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년 후에 음악하는 류한길(daytripper)이라는 친구와 함께 'platform for design and sound'라는 모토의 ‘slowalk'를 삼청동 작은 사무실에 차리게 됩니다. 그 곳에서는 음악 관련된 작은 사업과 더불어 개인 작업 위주로 일을 하면서 간간히 비영리단체들의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소위 잘나가는 단편애니메이션 작가였습니다. 미쟝센, 인디포럼, 해외단편영화제에 초청받고 스스로 뿌듯해하며 작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도 안되는 일을 했고 제 작업 및 디자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철없는 시절이었습니다. 당연히 수익이 나질 않으니 사업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같이 창업한 친구와 각자의 길을 가자며 저는 디자인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요. 사무보조직원을 채용하고 제가 집도 없이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해서 그런지 출근한지 며칠만에 그 직원이 그만두었습니다. 해서 그때부터 찜질방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유지비용을 만들기 위해 투잡을 합니다. 드라마 미술PD도 하고 작은 IT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거기서 받은 월급으로 사무실을 유지하며 동료들에게 월급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생깁니다.

하나는 한 비영리단체에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희망up)' 캠페인 디자인 의뢰를 받았습니다. 캠페인 아이덴티티, 홈페이지, 리플릿, 포스터... 인쇄비 포함하여 200만원에... 인쇄소를 찾아가니 인쇄비만 250만원이 넘더군요. 인쇄소 사장님은 제가 예산이 없다고 하니까 믿지 않았습니다(한국에서 디자인 비용은 인정받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디자이너들은 인쇄비용에 마진을 붙입니다). 그래서 캠페인 담당자와 인쇄소 사장님과 저, 이렇게 삼자대면을 하는 자리를 만들고 그 인쇄소 사장님은 모든 실체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인쇄소 사장님이 담당자를 혼내시더군요. "당신이 임 대표에게 30만원 더 주면 나도 30만원을 깎아 주겠소."
결국 저는 조금의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게 평생 잊지못할 제안을 하셨습니다. '슬로워크가 좋은 일을 하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슬로워크가 자리잡을때까지 인쇄비용을 받지 않겠다'는. 후에 슬로워크가 성장하여 빚을 다 갚았고 지금도 인연이 지속되어 슬로워크의 중요한 파트너로 일을 하는 곳입니다. 문성인쇄 남궁균 사장님, 참 고맙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환경단체 담당자에게 후원행사에 사용되는 엽서디자인과 인쇄 1천부 의뢰를 받습니다. 제게 견적을 물어봅니다.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비영리단체들은 예산이 부족하고, 저희가 견적을 드리면 '억'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으로 여쭤봅니다. 예산을 말씀해주시면 그 안에서 합리적으로 작업해드리겠다고... 그래서 말씀해주신 예산은 '10만원’. 아, 참으로 난감하지요. 그 당시 누구한테 들은 얘기인지는 몰라도 “100원짜리 일을 1억짜리로 해 주면 언젠가 고객이 1억짜리 일도 줄 겁니다."라는 말이 참 멋져보여서 바로 실행에 들어갑니다.
10만원으로는 엽서 700장 정도 인쇄하실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양보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인쇄소에 가서 감리를 하는 중에 재단없이 버려지는 자투리 엽서를 발견합니다. 그걸 주워옵니다. 그리고 자대고 칼질해서 엽서 1천부를 만들어서 납품했습니다. 담당자는 감동하시며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슬로워크에 돈은 못드려도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그래서 소개받은 분이 당시 환경단체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던 환경 컨설턴트 양인목 박사님이었는데 실제로 이 분이 슬로워크에서 함께 일하시면서 저희 조직에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DNA를 심어주셨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에 계셨던 이승민 연구원님, 고맙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외에도 슬로워크는 협력업체, 비영리단체와 일하면서 많이 배우며 지식을 습득하며 성장했습니다.

이 당시 블로그를 운영하며 회사가 많이 알려졌고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을 디자인하면서 많은 일들이 생겼고 회사는 양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회사가 알려지니 인재들이 많이 들어왔고, 일이 많으니 야근도 많이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야근을 합니다만.

이때 한 구성원이 전체메일을 보내며 퇴사를 하게 됩니다. '슬로워크와 대표님이 변하는 것 같다'는 취지의 메일이었습니다. 저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저 좋은 회사,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래서 안식월제도나 기타 복지제도를 파격적으로 만들었는데 제가 졸지에 나쁜 대표가 되어버린 겁니다. 언제나 일 중심이던 제가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이지요. 이때 태어나 처음으로 저를 객관적으로 본 것 같습니다. 회사에는 어떤 원칙과 시스템도 없었고 그저 대표의 호의로 그런 보기좋은 제도만 만들었으니 문제가 생긴거지요. 그 당시 강연도 많이 다니면서 제 입으로 회사자랑을 많이 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런 회사인줄 알았던 제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좋은 회사라면 구성원들 입을 통해 행복하다는 얘기가 나오도록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때부터 권한을 내려놓고 모든 원칙들을 구성원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개선된 부분도 있고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함께 노력했던 시간을 통해 서로 배우게 되며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퇴사했던 동료 3분이 재입사를 했습니다. 김도형, 박송희, 노길우님 참 고맙습니다.

회사는 이런저런 생채기를 겪으면서 또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처음에 3명이서 시작한 슬로워크가 어느덧 30명이 되었고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한 구성원도 있고 부모가 된 분들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10월 11일이 되면 꼭 10년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엔데의 메모장> 중 한 인디오 원주민이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슬로워크란 이름과 맞지 않게 참 빨리도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년이 되는 올해 슬로워크에서는 숨고르기를 하는 중입니다. 슬로워크는 지난 10년 간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해 왔는지(Until Now), 지금 슬로워크는 어떤 모습인지(Right Now), 앞으로 슬로워크는 어떤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할지(From Now on). 이 세 가지 질문에 간단하게나마 답해볼 수 있다면 10주년을 더 잘 기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중입니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7월에 과거를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에서야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10년 간 흩어져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일도, 다양한 구성원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행해보았던 여러 작업들을 통해 구성원들이 우리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고민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사회의 트렌드를 살펴보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들 하는데 우리가 쉴새 없이 달려오는 동안 세상은 또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을 기웃거리면서는 각자의 철학과 미션을 가지고 다양하게 생존해 나가는 조직들의 모습에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슬로워크 내부를 들여다볼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멋진 모습에 기분이 들떴다가도, 자아도취에 빠져 보이지 않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는 어깨에 힘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온오프라인의 많은 분들께 의견을 구했을 때는 슬로워크에 극찬을 해주신 분들도 계시고,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혹평을 해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말씀입니다. 새겨 듣겠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더 나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워크숍도 의미 있었고, 처음으로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을 모시고 진행한 대화의 자리도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슬로워크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슬로워크가 앞으로 추구하게 될 가치와 미션도 모습이 갖춰지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이 완료되는 12월 즈음에는 처음부터 진행해왔던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유할 계획입니다. 혹시 10살 슬로워크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조직들이 슬로워크가 했던 과정들을 보고 작은 아이디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슬로워크는 이렇게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있습니다. 협력업체에게 배우고, 고객에게 배우고, 동료에게 배웠습니다. 이런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슬로워크는 유년기를 무사히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간의 응원과 지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10년도 잘 부탁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슬로워크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겠습니다. 10주년을 맞아 모든 동료와 함께 3박 4일간 워크숍을 다녀옵니다. 다녀와서 계속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