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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강산개조는 4대강 사업이 아니라 텃밭가꾸기다?

 


미국 뉴욕에서는 기존 건물을 그린빌딩(녹색지향)으로 바꾸는 리모델링 사업과 옥상정원,쌈지공원도심의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아예 건축할 때 틈을 갈라 놓는)에 풀을 심는 운동과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토해양부 내년도 사업계획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과 비교 언급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업이 (마무리) 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명박 대통령)" 정말 4대강 사업이 강산개조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업일까? 강산개조론을 개조한 4대강 사업 발언이야 말로 언어의 왜곡이자, 가치관 몰락의 전조곡이 아닐까?

 

요즘은 뜸하지만, 녹색성장은 자연보호를 잘못 세탁한 말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살리기’사업의 시원(始原)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구상한 “대운하 프로젝트”는 사실 진정한 ‘녹색(환경)’은 애당초 없었다. 정권은 잡은 이명박 대통령은 여론이 좋지 않자, 녹색성장이라는 쾌쾌 묵은 카피를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고, 대운하를 탈색시켜 ‘4대강 살리기’를 다시 부상시켰다. 운하에서 하천정비, 하천정비에서 강살리기. 여론이 좋지 않을 때마다 이름만 바꾸었다.

 

이른바 한국판 녹색뉴딜은 애당초 잘못 구상된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된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외국의 정책이나 대규모국책사업을 모델을 수입할 때는 그 제도나 사업이 한국의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는 실용주의 관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통신사업의 경우 미국과 한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사업적 관점뿐만 아니라, 국토 면적이나 국민들의 생활 여건, 습성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운하 사업의 경우, 외국의 실패사례나 대규모국책사업의 미치는 영향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이명박 실용주의는 실용이 실종하고 개인의 치적을 위한 편의주의만 존재하고 있다.

 

오바마의 녹색뉴딜과 이명박의 녹색뉴딜이 다른 이유이다. 미국의 경제적 위기나 국책사업은 한국과 분명 다르다. 한국은 땅 덩어리는 미국의 한 주 보다도 작다. 크기가 다르고 질이 다르다. 이른바 한국의 복지모델이나 경제모델은 한국으로 수입된 영미학자(미국유학파)들의 영향이 크다. 한국의 6,70년대의 성장모델(정부주도의 독재개발주의)이 21세기의 성장모델과 달라야 하듯, 개발 중심의 세계관 또한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기인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이른바 6,70년대식 경제지상주의, 개발지상주의, 산업지상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어떤 부문의 사업을 역점으로 가져가야 하고 보완해야 할지 방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대운하, 4대강 살리기로 현실화 된 대규모 국책사업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실패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녹색이라는 가면을 쓰고 20세기 무대를 연출하는 부조리극이다. 연극에서는 성공할 수 있겠으나, 현실에서는 불통과 관객(국민)의 환불소동만 있을 뿐이다. 머리는 21세기로 나아가고 있는데 발은 반대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신개발주의로 가고 있다.


4대강 살리기와 텃밭 가꾸기

 

4대강 살리기는 세상을 크게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서 텃발 가꾸기’라는 세계관이 더 크다. 작은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아무리 크게 보려고 하지만, 과장되고 왜곡된 그림만 나올 뿐이다.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나왔듯이. 녹색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크다는 가치관이 살아 있어야 한다. 성장은 성장대로 하면 된다. 애당초 잘못된 만남은 이별만 있을 뿐이다. 도시에서 텃밭 가꾸기는 22조라는 돈이 들지 않는다. 설득만으로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진정한 녹색인프라다. 22조의 10%만 쓴다 해도 세상을 지금보다 정의롭고 풍요롭게 바꾸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웬 “4대강 살리기와 텃밭 가꾸기 비교”?.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4대강 살리기의 중심은 물만 되어서 안 되듯이, 도시에서 텃밭 가꾸기도 텃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산업문명관의 폐단을 성찰하고, 성장이라는 개념을 바꾸어 내겠다는 인식이 담겨있어야 한다. 텃밭 가꾸기는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생명을 살려낸다는 큰 세계관이 녹아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가 중심이 된 녹색성장이 잘못된 이유는 무엇일까. 4대강 살리기에 녹색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별도의 개념으로 가져가야 한다. 녹색성장을 다른 관점(다른 축)에서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갈되는 석유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태양광시대를 열어 보겠다는 것과 4대강 살리기 사업과는 무관하다. 관점과 인식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올 수 있다. 누가 태양광사업이나 녹색사업(녹색관점으로 사업화하는)을 반대하겠는가!




▲최근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도심의 전봇대나 사용되지 않는 거리 공터나 작은 공간에
꽃이나 풀을 심는 캠페인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 지고 있다.


 


획일적으로 실시하는 환경미화사업이 아니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유휴지나 쓰지 않는 공간을 활용.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자라는 작은 도시농업혁명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쿠바 도시농업이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에 따른 자구책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의미와 가치는 재해석되어 많은 나라에서 뿔푸리 녹색, 유기농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문제, 고갈되어가는 화석에너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주도의 대규모 국책사업이 아니라, 지역중심(거버넌스), 시민 참여를 통해
인식과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도시의 흉물로 변해가고 있는 무가지, 안내지 박스에 작은 텃발을...


 

강 살리기, 물살리기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4대강 살리기 날림공사는 결국 날림공사의 끝을 보여 줄 것이다.
새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미 지어진 공간을 잘 돌보고 견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폭우만 쏟아지면 어설프게 지어진 둑과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파헤쳐지는 현실을 매번 지켜보면서도..
삽질을 위한 삽질만 계속한다면, 4대강 살리기는 큰 재앙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이미 재앙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