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북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종이책은 이제 사양길 아니야?" 라는 말을 많이 듣곤 했는데요. (물론 그런 의견 때문에 북디자이너가 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종을 선택하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 고려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그 분야가 과연 유망한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유망산업과 사양산업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합니다. 1960년대에는 섬유나 신발 산업이 유망 산업이었지만 현재는 임금 상승과 기술의 발달로 사양산업이 되었죠. IT의 발달로 이외에도 많은 산업들이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현재 시점의 유망산업에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양산업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걸까요? 모두가 유망산업에만 시선을 두고 있을 때, 기존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분야에 접근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서점의 변신- 기존 방식을 해체하고, 재배열하기

[ 츠타야 서점 ]

일본 전역에 1,400여 개의 매장이 있는 츠타야 서점은 전반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곳인데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주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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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시아경제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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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zeen


츠타야 서점의 여러 매장들 중에서도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곳이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츠타야 서점인데요. 츠타야 서점을 설립한 마스다 무네야키는 처음 이 서점의 기획안을 내놓았을 때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도심과 대학가의 서점들도 문을 닫는 때에 한가한 단독주택가인 다이칸야마에 무려 4,000평 규모의 서점을 만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스다 무네야키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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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zeen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

그는 기존의 서점들은 단순히 '판매'를 하는 곳일 뿐, 고객 관점에서의 '구입'을 돕는 곳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서점의 매장에 분류되어 있는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분류는 유통 과정에서 정해진 분류이지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 분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츠타야 서점은 형태에 따른 분류가 아닌, 그들이 독자적으로 제안하는 내용에 따른 분류로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습니다.


마스다 무네야키는 플랫폼이 넘쳐나는 현재 시대에서 '제안 능력'을 강조합니다. 각각의 고객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줌으로써 고객 가치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 여행을 위해 여행 가이드책을 보러 갔다가 이탈리아의 한 지방을 특집으로 다룬 신간 잡지를 보게 될 수도 있고, 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고객은 단순히 가이드책을 보러 갔지만 다양한 제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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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zeen


마스다 무네야키는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기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정한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익숙하고 편리한 기존의 방식을 해체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츠타야 서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동아서점 ]

요즘 속초에 핫플레이스가 있다고 합니다. 동아서점이란 곳인데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서울 서촌의 '대오서점' 같이 오래되고 아담한 규모의 사진 찍기 예쁜 헌책방일 것만 같았는데, 사진을 찾아보고 좀 의외였습니다. 번듯한 건물 1층에 자리한, 다소 일반적인 서점의 모습이었는데요. 2015년에 확장, 이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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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동아서점의 내부를 살펴보면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긴 테이블은 카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안쪽에도 고객을 생각한 공간이 곳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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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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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또 매장의 중앙에 독립출판물 매대가 있는 것도 기존 서점과는 다른 점입니다. 독립출판물만 판매하는 서점도 아닌데 말이죠. 속초가 고향인 서점 운영자는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속초에도 독립출판물을 찾는 고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기존의 서점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의 분류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베스트셀러가 아닌 베스트셀러 '예감'서가, 두꺼운 책들을 비치해 둔 '그냥 무거운 책들', 주인장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그 작가의 다른 책과 묶어서 소개하기도 하는 등의 새로운 시각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 분류들은 모두 손글씨로 적혀있는데요. 책을 어렵게 대하려 하지 않고 그때그때 책을 배치하면서 손글씨로 적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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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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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동아서점은 1956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동아서점 역시 츠타야서점과 같이 서점 불황시대에 무려 3배나 규모를 키웠다고 하는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옛날 책을 모두 반품하고, 새로운 책과 분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고민으로 현재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LP의 역주행- 본질적 요소에 접근하기

[ 바이닐앤플라스틱 ]

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이 2010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LP를 제작하는 뮤지션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판매와 동시에 매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음원시장의 확대로 다시는 모습을 보기 힘들것만 같았던 LP의 판매량 급증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요. 너무 쉽게 음악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로 음악에 대한 소장욕구가 강해졌고, 음악을 흘려듣는 것이 아닌 집중해서 감상하려는 음악 본질에 대한 접근일 수도 있습니다.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즐거움이 충족되기 때문인데요.


지난 6월에 문을 연 바이닐앤플라스틱은 현대카드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 LP레코드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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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대카드


LP의 정식 명칭이 ‘바이닐’(vinyl)이고, 플라스틱은 CD를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이태원에 위치한 바이닐앤플라스틱은 지상 2층 규모의 공간에 국내 최대 규모인 4,000종(9,000여 장)의 LP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LP뿐만 아니라 CD, 카세트 테이프, 턴테이블, 헤드폰 등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도구들도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LP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음반 커버인데요. 진열된 수많은 음반 커버들은 꼭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보는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턴테이블이 없어도 LP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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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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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바이닐앤플라스틱을 찾는 연령층은 대부분 20-30대가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음원에 훨씬 더 익숙한 20-30대가 음악을 듣는 본질적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망산업에 관심을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을 가진다면 유망산업만이 답은 아닙니다. “5년 안에 종이 책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던 2010년 MIT 미디어랩 네그로폰테 교수의 예언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찾고 있고, 골동품으로만 느껴졌던 LP도 핫한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사양산업도 충분히 반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참고: <지적자본론>, 아시아경제,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한겨레

이미지출처: dezeen, 아시아경제, 오마이뉴스, 한겨레, 국민일보,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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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ikipedia)



존 바에즈(Joan Baez)는 대중에게 밥 딜런, 스티브 잡스의 연인이었으며, 60년대를 풍미한 ‘포크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칭호들은 그녀를 표현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뮤즈, 혹은 포크 뮤지션이기 전에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음악에서 그렇듯 전쟁터에서도 생명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 모든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소용없죠.

- 바에즈



오늘은 평화주의자이자, 인권운동가 존 바에즈를 알아볼까 합니다.



유년기 - 인종과 사상의 ‘다름’, 음악의 자극제가 되다


존 바에즈는 멕시코인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반전론자였던 그녀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나이부터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존 바에즈에게는 가장 큰 유산이었다고 말하는데요.




바에즈가 여성들 (출처:Heretic, Rebel, a Thing to Flout)



그녀는 남캘리포니아 레드랜즈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백인들은 피부가 검은 멕시코계라는 이유로 따돌렸는데요.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여,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때 느낀 ‘고립’과 ‘다름’이 음악을 하기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노력의 결과, 그녀만의 톤과 비브라토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존 바에즈는 교내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청아한 목소리는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자, 우디 거스리(Woody Gurthrie)를 잇는 포크계의 샛별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킹과 흑인인권 운동에 앞장서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존 바에즈는 퀘이커교 모임을 통해 마틴 루터킹의 연설을 듣고, 그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본인이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흑인 출입을 제한한 공연까지 경험한 그녀는 누구보다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크게 느꼈는데요. 마틴 루터킹의 연설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와 비폭력주의 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상적 스승’ 마틴 루터킹과 함께 (출처:nesta)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존 바에즈는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35만 명의 군중을 이끌며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열창했습니다. 그 외에도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현장에 있었으며,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단순히 가수가 아닌 인권운동가로 알려집니다.


마틴 루터킹은 존 바에즈의 사상을 다지는 데 다른 누구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주고,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인권을 노래하다


무명이었던 밥 딜런(Bob Dylan)은 존 바에즈를 동경하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피트 시거(Pete Seeger)의 소개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동갑내기이면서 서로의 재능에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이미 스타였던 존 바에즈는 그를 자신의 무대 게스트로 세우면서 도움을 주는데요. 밥 딜런은 순식간에 포크의 거물이 됩니다. 존 바에즈는 밥 딜런에게 정치적 행보에 동참하길 원했지만, 밥 딜런은 원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함께 (출처:tripod)



하지만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와 같은 전쟁반대, 인권을 노래하는 곡들을 씁니다. 그때부터 밥 딜런은 60년대 최고의 저항 뮤지션이자, 가사를 문학 반열에 올려놓은 시인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 인연은 나중에 ‘롤링선더’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통해 이어집니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얼마나 많은 포화가 휩쓸어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곁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밥 딜런 ‘Blowin’ in the wind’ 가사 중


대중들에게 두 사람은 혼동기였던 60년대에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포크는 저항의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그들을 롤모델 삼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밥 딜런 곡을 자주 부르는  바에즈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최전선에 나서다


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이 거세지자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납니다. 존 바에즈도 당시 오클라호마에서 징집 거부 운동 대열에 합류하는데요. 그때 징병 거부 운동의 지도자인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를 만나, 비폭력 시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합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인에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데이빗 해리스가 징병거부로 수감되면서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남편이었던 데이빗 해리스와 함께(출처: three years in prison)



70년대 초, 존 바에즈는 베트남 남부에 직접 찾아가는데요. 하지만 그때 ‘크리스마스 폭격’이 시작되고 그녀는 11일 동안 방공호 아래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곡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군인들은 몰래 들었으며,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거나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 방공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내게 어떤 선물을 주었던가

내게 미소를 지어 주고 조용히 고통을 나누었지

(중략)

나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들아, 넌 지금 어디 있니?


- 바에즈 - ‘Where Are You Now, My Son?’ 가사 중


하노이 외에도 태국의 라오스 피난민 수용소, 말레이시아 표류난민들의 임시거류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우드스탁, 반전과 희망을 노래하다


혼란스러운 60년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기성세대의 불만으로 히피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반전, 사랑, 평화를 외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개최됩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더 후 등 당대 최고 록스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존 바에즈 또한 임신한 몸으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50만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반전을 외쳤습니다.




우드스탁의 영웅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출처:reddit)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기타로 연주해서 베트남 전쟁에 허덕이는 미국을 조롱했는데요. 왜곡된 기타음으로 폭격하는 소리를 내는 모습은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우드스탁은 60년대의 종지부였으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존 바에즈는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첫 번째 순서로 노래를 불렀으며, 역사적 현장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습니다.




존 바에즈, 노래하는 인권운동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사회적, 정치적 시각은 확고했습니다. 항상 비폭력 저항의 원칙에 충실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그녀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프랑코 정권이 끝난 스페인에서, 생방송 중 저항 세력의 성가로 유명한 ‘노 노스 모베란’을 열창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사라예보 첼리스트’로 유명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와 함께 공연하며 시민들을 위로했는데요.



'사라예보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자극받은 존 바에즈



그 외에도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했으며, 후마니타스라는 인권보호기구의 회장으로 지내면서 군비 철폐에 관한 갖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받아,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고, 인권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교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아틀란타에서는 8월 2일, 산타나 크루즈에서는 8월 27일을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로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명예는 행동에 깃드는 것이다.”(출처: thelocal)




뮤지션은 자신의 가치를 음악을 통해 표현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음악은 유행을 타게 되고 대중과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추구하던 가치가 행동에 깃들었기 때문에 더 인정받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녀의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당장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 바에즈




출처: 포크의 여왕 존바에즈, 존바에즈 자서전 -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



작성: 류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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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콘텐츠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릅니다.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의 줄임말인데요, 최근에는 덕후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생겼죠. 슬로워크와 UFOfactory에도 숨어있는 덕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덕력을 파헤쳐보았습니다.



다이어리만 12개, 들어는 봤나 일정 덕후

저는 다이어리 1개를 꾸준히 쓰기도 힘든데요, 무려 12개를 쓰는 일정 덕후가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솔루션본부 김다온 기획자입니다. 왜 일정 덕후가 되었는지 물어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덕후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늘어나는 다이어리를 보며 스스로 인정했다.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하루, 주, 월 단위로 계획하는 게 재밌고, 일정을 적는 순간 정리되는 기분이 좋아 점점 일정 덕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다이어리가 용도와 크기, 상황별로 하나둘씩 늘어났다. 집용/회사용/온라인용/가벼운 외출용/큰가방용/여행용/친구관계용 등.. 놀랍게도 가끔 밀릴 때가 있긴 하지만 모두 사용 중이다.


Q. 어떻게 잊지 않고 기록하나?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고자 하면 종류별로 꺼내게 된다. 저녁에는 주로 일기 용도의 다이어리를 쓰고, 아침에 일과 시작 전에 전체적인 다이어리를 쓰고 할 일을 정리하고, 확인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 때 다이어리를 작성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면 기분이 좋기 때문에 밀려도 오히려 기분 좋게 몰아서 작성한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일정을 잘 잊어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씩 공지를 해줄 수 있다. 다양한 일정 관리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난 후 추억용으로도 좋다. 생생하게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그때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가끔 증거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Q. 개인적으로 연초에 다이어리를 샀다가 항상 매번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데 끝까지 쓰는 비법이 있나?

예를 들어, 이 다이어리를 끝까지 쓰면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같은 미션과 믿음 혹은 미신을 부여한다. 즉 각 다이어리별로 안 지키면 찜찜할만한 무언가를 정해둔다.



현재는 코딩 덕후, 진정한 덕업일치

일본연예인, 일본어, 만화, 애니, 일드, 코스프레, 코딩까지 진정한 덕업일치를 이룬 BM팀 강효진 개발자의 덕력을 파헤쳐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덕후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습관이나 성격에 따라서 오타쿠가 될 지 안 될지 결정된다고 본다. 어렸을 적부터 뭐 하나에 꽂히면 미친듯이 파는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 영재반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때 수학문제 푸는 것에 빠져서 겨울방학동안 수학문제집을 8권 정도 풀었다.


지금도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집요하게 파는 건 똑같다. 노래 하나에 꽂히면 열흘정도는 그 노래만 듣는다. 아이돌 팬질하면서 스트리밍 돌리면 딱인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능력을 썩히고 있다.


사실 덕력만 보면 꽤 여러가지 잡다한 것에 많이 빠졌다. 스스로 덕후라고 인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2003년부터다.


덕력 히스토리

2002 - 일본연예인, 일본어, 만화, 애니, 일드
2004 - 코스프레(만화를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하면서 총괄담당으로….)
2005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콩은 사랑입니다.
2006 ~ 2010 - 게임덕질, 덕후게임으로 유명한 마비노기. 특정 색 아이템을 접기 전까지 거의 다 모았…다;? 그깟 0, 1 데이터가 뭐라고;;
2012 ~ 현재 - 코딩덕질.. 스크립트 언어 좋아한다. 하지만 개발언어는 가리지 않는다능….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크게 본다면 일본어와 지금 하고 있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덕질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일본어는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의 예능 자막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2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일본 문화가 완전히 개방된 시절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새 앨범이 나오면 수입하는 업체에 예약하고 기다리거나, 이대에 있는 매장으로 직접가야하는 시스템이었다. 영상도 일본에 거주 중인 사람이 직접 녹화를 떠서 업로드하면 자막팀이 붙어서 2~3일 지나야 자막이 나왔다.


자막이 나와도 인코딩해서 카페나 팬페이지에 올라오는 기간이 3~4일 걸렸다. 영상은 떴는데 자막이 없으면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예능은 은어도 많이 쓰고, 말이 빠른 편이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드라마나 예능을 자막 없이 보는 데 큰 무리가 없다. 14년 전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을 위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최근엔 자막나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지금처럼 덕질하기 쾌적한 환경이었다면 일본어 공부를 안했을 거다.




개발은 일본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 연예인 정보 얻기가 정말 힘들었다. 잡지가 나와도 해석 올라오는데 한참 걸리고, 한국 아이돌 팬 커뮤니티처럼 활성화되어있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좀 뜨기 시작한데가 다음카페 <일본티비> 정도다.


당시엔 ARASHI를 좋아했는데, 아라시 팬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획일화된 다음카페 레이아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스스로 만들어야지 어쩔 수 있나. 제로보드와 php코드, html, 아주 허접한 수준이었던 자바스크립트를 공부해가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게 첫 웹개발 작품이었다.


일본어 공부하면서 잡지 구매하고, 업로드하고 정모도 개최하고 매주 정팅도 했다. 지금은 호스팅 서비스로 유명한 카페24가 그땐 채팅서비스로 꽤나 유명했는데, 주말마다 채팅으로 만나서 새로운 노래 이야기도 하고 드라마 이야기도 하면서 운영했다. 1년 반 동안 1~2달에 한 번씩 디자인 바꾸고 리뉴얼 하면서 개발에 익숙해졌다. 


사실 대학 전공도 개발과는 무관해서 개발로 밥 먹고 사는 건 상상도 못했다. 대학 졸업반 때 들은 통계학 수업에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개발에 급 흥미가 생겼고, 졸업하고 학원에서 배워서 현재 3년째 개발자로 살고 있다. 결국 덕질로 인해서 지금의 직업이 결정 된거니 진정한 덕업일치라고 생각한다.



화장품 처방해드립니다. 코스메틱 덕후!

화장품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코스메틱 덕후, 일명 코덕인데요, 슬로워크에도 있습니다. 코덕인 스티비팀 조은지 디자이너에게 요즘 꽂힌 아이템을 물어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학생 때부터 피부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화장을 하면 좀 나아보일까 하는 생각에 좋은 파운데이션을 찾아 백화점 이곳저곳을 돌았지만 아무리 비싼 파운데이션도 내 얼굴에 얹으면 별로였다. 아무리 비싸고 좋다고 소문난 제품도 그저그렇게 표현하는 내 피부의 문제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부터는 로드샵 제품부터 백화점 제품까지 골고루 피부에 테스트하고 있다. 호기심이 통장을 마르게 하는 것이다. 직접 사기보다는 매장에서 만지작거리다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쓰던 건 다 쓰자는 생각에 사지 않지만 그래도 꽤 양이 많다. 하지만 항상 쓰는 것은 한 두가지이고 대부분은 몇 번 쓰다 손이 잘 안 가는 것들이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진정한 코덕의 길로 가려면 아직 갈길이 멀기에(미니멀리스트로 살기를 원하기에...사고 싶은 화장품을 전부 사진 않는다) 특별히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은 없다. 그저 내 피부를 노화에서 한걸음이라도 멀어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화장품을 골라 달라며 화장품 처방을 요청한다면 척척 해낼 자신은 있다.


Q. 요즘 꽂힌 제품은 무엇인지?

스XXX 프로폴리스 앰플!, 아XX CPI크림

일단 저자극, 피부회복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제품을 고른다. 이 두 제품은 각각 그 역할에 아주 충실하다. 프로폴리스는 피부염같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쓰고 안 쓰고에 따라서 피부가 많이 차이난다. 마치 약산성 클렌징폼을 쓰다가 일반 비누나 클렌징폼을 쓰면 피부가 뒤집어지듯이… 세일도 자주하기 때문에 용량, 가격대비 훌륭한 편이다. CPI크림은 과민감 피부를 타겟팅해서 나온 제품이다. 이것도 바르고나면 피부가 편안한 느낌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피부가 진정된다는 장점이 있다.


Q. 평소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나?

기름이 폭발하는 느낌일 때는 씻고 크레오신같은 알콜 덩어리를 T존에 발라주는 편이고, 얼굴에 열이 많은데 무식하지만 미스트를 뿌리고 선풍기를 쐰다.



강수확률 20%는 비가 올까? 웨덕의 결론은?

기상청 예보를 얼마나 믿으시나요? 저는 2개의 앱으로 날씨를 참고하는데요, 무려 20개의 날씨앱을 사용하는 웨덕이 있습니다. 단어도 생소한 웨덕, 스티비팀 조성도 팀장의 덕력이 빛을 발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Q. 무슨 덕후인가?

웨덕이다. 내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지어줬다. '비'와 '구름'에 특히 관심이 많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고3 생활이 너무 갑갑해서 소소한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에 신문을 봤는데, 일기예보의 강수확률을 눈여겨 봤다. 그렇게 몇달 꾸준히 보면서 그날 비가 얼마나 왔는지 따져보니, 강수확률이 40%면 거의 대부분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왔다. 강수확률이 30%면 우산이 없다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비가 안 오는 경우도 많다. 강수확률이 20%면 거의 비가 안 온다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강수확률을 눈여겨 봤던 것은 비맞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덕력 덕에 스마트폰에서 날씨앱 20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중 Weather Underground는 여행 시 빛을 발한다. 스톡홀름에서 오후 5시 30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구름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에서 #instagoorm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해시태그가 되었다.



슬로워크 덕후들의 덕력, 어떠셨나요?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무언가 하나에 깊이 몰두하면서 즐긴다는 사실이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데요, 저도 덕업일치를 꿈꾸며 저에게 숨어있는 덕후 기질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작성: 권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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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디자인 등 창조적인 직종의 업무 공간은 일반적인 사무실과는 많이 다를 것 같지 않나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설계된 많은 사무실은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요. 수영장이 있는 회사, 게임룸과 댄스 스튜디오가 있는 회사, 호텔급 레스토랑이 있는 회사, 신의 직장으로도 불리는 이런 공간에서 한 번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볼 겁니다.



Haldane Martin(CC) via flickr.com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미 있는 공간을 바꾸는 일은 실행도 어렵고, 예산도 많이 들기 때문이죠. 또한 이미 적응해버린 환경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여 서로 다른 직군 간의 협업이 필요한 순간은 점차 많아지지만, 여전히 정체 중인 그들의 공간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소개할 내용은 창조적인 공간 환경을 위한 스탠포드대학교 d.School의 실험을 담은 책 <메이크스페이스>의 일부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주어진 환경을 간단히 변화시켜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합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고 예산도 많지 않다면, 이제 창조적으로 공간의 문제를 해결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한 행동만으로 변화 만들기



간단한 의식 만들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의식으로 분위기를 변화시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면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 오도록 하는 의식을 만들어 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발 냄새를 걱정하며 진저리를 치거나 양말에 구멍이 났다며 핑계를 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의 시작 전 긴장되었던 참가자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이것 말고도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캠프파이어

오늘 회의에는 진지한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캠프파이어처럼 앉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가자들은 낮은 자세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동그랗게 모여 앉습니다. 모닥불은 없지만 바뀐 자세만으로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로 회의가 전개되는 것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자세는 안전함을 느끼게 하므로 어려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특히 유용하다고 합니다. 캠프파이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많지 않아요. 낮은 스툴이나 폼박스, 카드 보드 상자를 이용해 둘러앉아요. 그마저도 없다면 바닥에 앉아도 된답니다.



유용한 도구 직접 만들기



간단하고 재미있는 프로필 전시대

회사 입구에 간단하고 재미있는 프로필 전시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 전시대는 조직의 활기차고 인간 중심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데 효과적입니다. 전시대를 통해 이곳에 오는 방문객들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어요. 또한, <슬로워크 x UFOfactory>처럼 구성원의 변화가 큰 조직에서도 새로운 동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전시대를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도록 만들면 역동적이고 즐거운 조직 문화를 보여주기에 더욱 효과적입니다.  



저렴한 예산으로 공간 만들기


하얀 방

회사 내에 2~3평방미터 정도 되는 밀폐된 회의실이 있나요? 이 방을 특별한 테마로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얀 방’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화이트 보드로 채워진 방입니다. 온통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은 특정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이 방은 풍부한 아이디어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자극합니다. 하얀 방의 목적은 사람들이 몰입하고 만져볼 수 있는 페이지를 방 하나 크기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활동적인 공간에 퍼치를 배치하기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공간에 작은 퍼치(perch)를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요? 퍼치는 짧은 순간적 상황을 위해 잠깐 멈추거나 기댈 수 있는 장소로 활동적인 업무 문화를 독려합니다. 낮고 폭신한 소파에서 일어날 때보다 훨씬 에너지가 적게 들기 때문에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에 있는 퍼치는 의도치 않은 협업의 기회도 만듭니다.



이렇게 공간을 변화시키면서 아마도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생길 겁니다. 때로는 야심 차게 준비한 시도가 실패할 수도 있고, 거창한 효과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미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태도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과정 그 자체로 놀랍도록 창의적인 경험을 하는 셈입니다. 더러워지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성: 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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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을 해도 참 알아듣기 어렵게 썼다' 이런 느낌이 드는 문장 보신 적 있나요? 가끔 제가 쓴 메일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는 번역서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에 혹시 내가 난독증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요, 이런 어색한 표현은 맞춤법 검사기도 고쳐주지 않아 슬픕니다.





그러던 중 문장을 다듬는 법을 소개한 책을 만났습니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한 김정선 저자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책입니다. 어색한 문장이 불필요한 표현을 벗고 더 읽기 쉬운 문장으로 바뀌는 모습을 하나하나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합니다.






중독성이 너무 강한 ‘것’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저자가 공식처럼 외운 문구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접미사 ‘-적’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은 불필요하게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독성이 강한 의존 명사 ‘것’을 고쳐보겠습니다.





①~③예문처럼 ‘것’ 또는 ‘~한다는 것’을 빼면 의미를 유지하며 간결한 문장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라는 짧은 문장에는 ‘것’이 두 번이나 있는데요,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상상은 즐거운 것이다 (또는) 상상은 즐거운 일이다’로 고치면 훨씬 깔끔해 보입니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1


‘있다’는 동사이기도 하고 형용사이기도 합니다. 동사일 때는 동작을, 형용사일 때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가령 ‘오늘 종일 집에 있었다’ 혹은 ‘오늘 회식이 있다’처럼 쓰입니다. 이처럼 흔히 쓰는 표현이다 보니 아래 예문처럼 굳이 필요치 않은 곳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다’ 이 문장 속 ‘있는’은 ‘상태’라는 명사를 꾸미는 관형사로 쓰였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요소입니다. ‘~바싹 마른 상태였다’로 쓸 수 있습니다.


‘그 제안에 대한 검토가 있을 예정이다’ 이 문장은 ‘검토’라는 동사를 주어로 만든 예문인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검토는 ‘하는’ 것이지 ‘있는’것은 아닙니다. ‘~검토할 예정이다’가 더 어울립니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2




’있다’가 반복적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에 있어’, ‘-하는 데 있어’, ‘-함에 있어’, ‘-있음(함)에 틀림없다’입니다. 문장의 액세서리 같은 장식 요소입니다.


왠지 자주 쓴 표현인 것 같아 흠칫 놀랐습니다. 어딘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유용한 것 같고요. 저자는 이런 표현들은 한국어 표현을 어색하게 만들기 때문에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②번 예문처럼 ‘-있음(함)에 틀림없다’와 같은 표현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꼴, 개 꼬리가 개를 흔드는 꼴입니다.





제가 안시켰는데요


한국인은 배달 음식을 좋아합니다. 치킨도 시키고 짜장면도 시키고. 이렇다 보니 말속에서도  ‘시킨다’는 표현을 즐겨 쓰는 걸까요?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되는 단어에 접미사 ‘-시키다’를 붙여 쓰는 일이 많습니다.





각 문장에서 ‘-시키다’가 붙은 표현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입니다. 모두 한자어 명사에 ‘-시키다’를 붙여 동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 살펴보면 ‘-시키다’보다는 ‘-하다’가 붙어야 하는 단어들입니다.


‘~교육시키지 못한 탓’은 ‘교육하지 못한’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건 ‘교육하는’ 것이지 ‘교육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아래 ‘소개하다’와 ‘격리하다’도 무엇무엇을 한다는 뜻을 갖는 단어라 ‘-시키다’를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형을 써야 하는지 안 써도 되는지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문장도 지저분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미 과거형인 동사에 어미 ‘-던’을 붙여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①~③예문처럼 ‘-던’이 붙는 표현은 과거형보다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심지어 뜻도 같습니다.






그, 이, 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지시 대명사는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물론 건망증으로 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는 예외고요. 위 예문처럼 ‘그, 이, 이러한’을 섞어 쓰면 무엇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헷갈리고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지시 대명사도 잘 쓰면 문장이 질서 정연해지는 효과가 있으니, 되도록 꼭 필요한 경우에만 쓰도록 합니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거듭 강조하는 점이 있습니다.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다.’ 꼭 필요한 요소만 쓰인 간결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간결하고 바른 문장을 쓰기가 쉽지 않겠죠. 어딜 어떻게 고칠지 모르겠다면, 요소를 뺄 수 있을 만큼 빼보라고 말합니다. 빠져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다면 알맞게 다듬었다는 뜻이겠죠?


출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작성자: 디자인솔루션본부 디자이너 곽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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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던 종이접기 놀이를 기억 하나요? 색색의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즐거웠던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은 종이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페이퍼 아티스트(paper artists)’들을 소개합니다. 종이를 칼로 오려내는 쉽고 간단한 작업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섬세한 공정까지 방법도 가지각색 인데요,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소소한 즐거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블루위(Shamekh Bluwi)’는 드레스 입은 여인의 실루엣을 칼로 오려내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 속에 도시의 여러 풍경을 담습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출처: boredpanda



오래된 책의 변신

‘세실리아(cecilia)’는 오래된 책을 재활용합니다. 수 세기를 거친 얇은 종이를 찢고, 자르고, 붙이면 새로운 조형물이 탄생합니다. 이 과정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는군요. 책 속에 담겨있던 오래된 이야기들은 세실리아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출처: cecilialevy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아일라와디(Gunjan Aylawadi)’는 화려한 색감의 종이로 패턴을 만듭니다. 종이를 꼬고, 엮어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기법은 오랜 노하우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종이로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는 정교한 패턴이 참 아름답습니다.


출처:gunjanaylawadi



종이로 엿보는 인체의 신비

‘라야(Raya)’는 종이로 운동선수를 만듭니다. 육상, 체조, 수영 등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가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는데요, 층층의 레이어와 부드러운 곡선이 인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출처: instagram



365 종이학 프로젝트

‘크리스틴(Cristian Marianciuc)’은 종이학을 캔버스로 활용하여 매일매일을 기록합니다. 종이학을 접어 그날그날의 기분을 다양한 컬러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로 장식하는데요, 이 작업은 창의적이고, 활기찬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출처: a-crane-a-day-the-365-origami-crane-project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던 종이가 이렇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요즘 취미로 ‘페이퍼 아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름다운 도안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힐링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번 주말에 별다른 계획이 없다면, 어린 시절 즐겨 하던 종이 접기 놀이를 떠올리며 페이퍼 아트를 시도해 보세요. 평범한 종이가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주말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by 고슴도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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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큐슈 구마모토 현에서 발생한 지진은 부산 지역에까지 여파가 미칠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자연재해 외에도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재난은 엄청난 물리적 피해 외에도 우울증, 정신분열증, 알콜중독, 자살 등의 심각한 정신적, 심리적 피해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물론 재난이 발생하면 사상자 구조, 재난 현장 수습이 가장 우선입니다. 생명과 직결되진 않지만 세심하게 이재민들의 마음까지 생각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재난 지역은 계속 황폐한 곳이어야만 할까: Gap filler project



2011년에 일어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은 185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피해가 상당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는 그 당시에도 도시 복구를 위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이재민들과의 소통을 중시하였는데요. (시민참여, 함께 만들어가는 뉴질랜드 시민소통 캠페인 Share an idea!)


그 중 갭 필러(Gap filler)라는 작은 단체는 지진이 휩쓸고 간 황폐한 재난 지역에 창조적인 공공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팔레트로 파빌리온을 만들어 라이브 공연과 이재민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만들었는데요. 이 공간은 여름에 오픈하여 약 70개의 이벤트가 이뤄졌고, 약 2만5천 명이 이 공간을 경험했습니다. 2013년 해체 예정이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재건 캠페인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속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갭 필러의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디자인적 접근으로 그 지역의 특수성 및 취약성을 이해하고 공간과 이벤트를 구축함으로써 길고 어려운 재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재민도 사적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Paper Partition System



재난이 일어나면 흔히 뉴스에서 재난 현장의 상황과 함께 이재민들이 체육관에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당장 머물 곳이 없는 이재민들은 체육관 등의 넓은 공간에 모여 장기간 생활하게 됩니다. 삶의 터전을 잃거나 가족까지 잃은 이재민들의 생활은 하루하루 참담한 심정일 텐데요. 모두가 재난 현장만 집중하고 있을 때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체육관의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실내체육관의 모습


전혀 개인의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대피소에서의 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재민들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게루 반은 종이로 만들어진 관으로 기둥과 대들보를 만들고 천을 걸어 가족들의 개인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천은 커튼처럼 낮에는 개방해놓고 취침 시에는 닫을 수 있으며, 조립이 매우 쉬워 자원 봉사자나 이재민이 스스로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여름에는 모기 등의 벌레로 인해 괴로워하던 이재민을 위해 모기장을 설치해 주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지원 외에도 이재민들의 상황을 진정성 있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이웃의 소식이 궁금하지는 않을까: Code for Namie



코드포나미에(code for namie)는 나미에라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일본의 개발자 할 세키씨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개발자로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일반 시민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인 ‘코드포재팬((Code for Japan)’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그중 가장 주목받은 사례가 바로 코트포나미에입니다.

나미에 마을은 후쿠시마 원전 옆에 있던 작은 농촌 마을인데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유출까지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나미에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각지로 흩어졌지만 평생의 터전이었던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그리워 코드포재팬에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코드포재팬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흩어져 있는 나미에 주민들의 마을공동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직접 나미에 주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를 열고 이를 통해 아이디어들이 실제 앱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나미에 마을의 방사능 오염 지도, 현재 사진 등을 서로 공유하며 마을 공동체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안전확인’ 기능으로 재난 지역에 거주 또는 체류하는 지인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타임라인에 ‘안전해요’를 표시해 안전 여부를 알릴 수 있는데요. 단순히 그 기능을 넘어서 지난 파리 테러 참사에서는 ‘안전 점검’기능을 활성화하여 현장 인명 파악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재난은 대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수습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상자 구조, 필요 물품 지원 등 기본적인 과정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그 외에 이재민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치유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참고: gapfiller,shigerubanarchitects,bloter,codefornamie

사진 출처: newstomato


by 산비둘기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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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슬로워크에서 이면지함 정리를 맡고 있는데요, 이면지 담당으로서 겪는 소소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면지함에 양면지가 섞여 있거나 스테이플러를 제거하지 않았거나 용지 방향이 반대로 되어있는 등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슬로워크의 구성원들은 이면지를 어떻게 쓰고 어떤 불편사항이 있는지, 문제를 찾고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구성원들의 이면지 사용현황을 조사했습니다. 응답률이 저조할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많은 구성원이 답변해주었습니다. 물론, 익명으로요.



현재 쓰고 있는 프린터는 이면지 출력 여부, 용지 크기에 따라 총 4개의 트레이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A4 이면지는 트레이 5, 새 종이는 트레이 1이며, A3 이면지는 트레이 3, 새 종이는 트레이 2인데요, 구성원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대부분 구성원이 A4 이면지 트레이 번호는 알고 있으나, A3 이면지는 모른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이면지를 정리할 때 A4 용지의 비율이 높아 실제로 A3 용지는 어느 정도 쓰는지도 물어봤습니다. 50%가 A3 용지를 쓴다고 답했는데요, 아마 시안 출력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모아찍기는 90%가 사용한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매번 사용하는 구성원도 7명이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이면지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물어봤는데요, 다양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용지 방향에 대한 답변이 많았는데요, 컴퓨터마다 설정이 달라서 가로와 세로가 제각각이라 쓸 때마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 프린트할 면의 방향이 위인지, 아래인지 헷갈린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3가지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문제]
 
용도에 따른 이면지 트레이 번호를 잘 모른다.

[해결] 이면지 트레이 번호와 용지 방향에 대한 안내 스티커를 프린터에 붙인다.




[문제] A4 이면지 인쇄 시 출력 방향이 제각각이다.

[해결] 프로그램에 따라 용지 방향 설정이 다르므로, 인쇄 시 종(세로)방향 설정법을 안내한다. 




[문제]
 이면지함에 양면지나 구겨진 종이, 스테이플러가 제거되지 않는 종이가 섞여 있을 때가 있다.

[해결] 이면지를 넣을 때 주의사항을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붙인다. 




사실 이면지를 사용하는 과정이 조금 귀찮은 것은 사실입니다. 인쇄 트레이를 설정하고, 때론 모아찍기를 위해 레이아웃도 선택해야 하고, 용지 방향도 따로 설정해야 하니까요. 이면지 담당인 저도 무심코 새 종이에 인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심코 뽑은 새 종이를 만드는 데는 머그잔 한 잔의 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면지 1장을 사용하면 결국 한 잔의 물을 절약한 것과 같은데요,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이면지 사용으로 물을 아껴보는 건 어떨까요? 



by 펭귄 발자국, 하늘다람쥐 발자국




Posted by slo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