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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

성범죄의 아픔을 겪은 이들, 카메라 앞에 서다

 

소설가 우애령씨의 단편소설 중에 '정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이윤기 감독은 각본을과 연출을 맡아 김지수, 황정민 주연의 영화 <여자, 정혜>를 만들기도 했지요. 소설과 영화에는 어린시절 친척 어른에 의해 근친 성범죄의 피해자로 큰 상처를 입고,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의 사건 은폐 속에서 또 한 번 아픔을 겪은 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여자 '정혜'가 등장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거의 맺지 않고 살아가는 우체국 여직원 정혜의 건조한 표정이, 어린시절의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마음이 아팠는데요. 정혜와 같이 성범죄 피해의 경험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어느 사진작가의 프로젝트가 있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포토그래퍼 그레이스 브라운(Grace Brown)은 2011년 10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의 성범죄 피해 경험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던 그레이스는 이후 성범죄 피해자들을 만나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젝트 언브레이커블(Project Unbreakable)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들었던 말을 흰 종이에 적고 이를 촬영하는 방식의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프로젝트는 성범죄가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레이스는 이 프로젝트가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치유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음을 알게됩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지난 시간들 동안 깊은 곳에 꼭꼭 감춰두기만 했던 상처들을 꺼내어 흘려보내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간혹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타인에게 처음으로 알리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레이스의 블로그를 통해 프로젝트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그레이스를 만나 촬영을 함으로써, 혹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그레이스에게 이메일로 보내 블로그에 업로드함으로써 프로젝트에 참여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들은 한마디, 혹은 몇마디의 말을 직접 적어 공개한 사진들입니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사진을 통해 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아픔을 겪었을지, 그리고 그 사건들이 지금까지 이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걸")

 

 ("저항하려 하면 너만 다치게 될 뿐이야")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널 죽일거야")      ("걱정 마, 남자애들은 다들 좋아하게 되어있어")

 

 ("엄마에게 이 얘기를 하면 이제 아무도 널 신뢰하지 않게 될걸")

 

(아빠 : "엄마에게 말하면 안된다")

 

("내일 보자")

 

("딸을 사랑하는 아빠들은 다 이렇게 한단다. 내가 널 사랑하는걸 알잖니")

 

  ("우리는 네 삼촌에게 맞설 수 없어" - 내가 10살 때 나의 부모님이 하신 얘기)

 

 ("아무도 네 얘길 믿지 않을테고,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걸. 그리고 다시는 누구도 너를 사랑해주지 않을거야. -

내가 3살부터 7살 때까지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

 

 ("나로 하여금 너에게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네가 정말 싫어") 

 

 ("너는 내 덕분에 네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경험이 많아졌으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프로젝트 언브레이커블은 작업 진행에 필요한 경비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인 IndieGoGo를 통해(http://www.indiegogo.com/Project-Unbreakable)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그레이스 브라운은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며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가해자의 폭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Unbreakable) 강한 존재라는 알게 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하고요.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 <여자, 정혜>에서 정혜는 길에서 주운 아기고양이를 돌보고, 종종 우체국을 찾는 남자에게 말을 걸게 되면서 서서히 세상에 마음을 열어갑니다. 상처와 아픔은 그것을 속에 꼭꼭 숨길 때가 아니라 꺼내어 볼 때 비로소 치유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큰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Project Unbreakable과 같은 공유와 공감의 경험을 통해 정혜처럼 다시 마음을 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미지출처 |http://projectunbreakable.tumblr.com

Grace Brown의 이메일 | projectunbreakable@gmail.com

 

by 살쾡이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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