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로워크의 대표 권오현입니다. 벌써 2018년의 상반기가 지나가네요. 요즘 저는 우리가 왜 이곳에 함께 모였는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직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오늘은 그 변화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담아 조금 설명드리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비영리·사회혁신 영역에서 디자인과 디지털로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던 슬로워크와 UFOfactory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소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기존 슬로워크 창업자 임의균님과, 역시 시스라는 이름이 더 편한 제가 공동대표를 맡았고 여러 기대감 속에 안정된 합병을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합병 발표 후 일 년이 지난 지금, 대표 자리에는 이제 저 혼자 서게 되었습니다. 소사님은 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더 재밌는 조직을 만드는 데 힘써주실 예정입니다.
합병 당시 우리는 슬로워크가 가졌던 디자인 정체성과 UFOfactory가 가졌던 디지털 정체성의 시너지를 기대했습니다. 소셜 분야에서 규모가 큰 조직이 갖는 임팩트가 있을 거라고 자부했습니다. 장밋빛 미래만 꿈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훌륭한 동료가 모여있는 두 조직이 힘을 합치면 더 많은 일이 가능해지리라 믿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션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 ‘슬로워크다움’이라 믿으면서요.
제도의 통합, 팀제의 도입, 새로운 미션과 비전 설정 등 필요한 단계를 하나씩 밟았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를 위한 안전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던 저희의 바람과는 다르게 땅은 매번 흔들리고 구성원은 그 위에서 휘청거렸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분들이 늘고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는 뼈 아픈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경영진의 무능을 지적한 대목에서는 맥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공동대표라는 체제가 구성원들에게는 의사결정의 비효율, 분산된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기존 슬로워크가 가졌던 디자인 역량은 여전히 많은 분이 잘 인식하고 있으나, UFOfactory가 만들어왔던 디지털 역량은 그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소셜 섹터에서 독보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합병의 취지가 무색하게, 고객들은 ‘슬로워크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했습니다.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실체가 없는 ‘슬로워크다움’을 혹시 동료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양보하며 그렇게 우리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잃어버린 것 혹은 양보해 왔던 것을 하나씩 되찾기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슬로워크와 UFOfactory의 결을 맞춰보던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두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제도와 목표, 구성원만큼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훌륭한 기반임을 확인했습니다. 두 조직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서로의 기대를 맞추는 과정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을 뿐, 우리가 해왔던 다양한 시도는 앞으로 더 드러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일이 ‘옳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의 슬로워크는 구성원들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가치를 지향하던 조직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도전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주도하고 책임지되 충분히 의견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나의 리더십 아래 조직은 투명하게, 프로세스는 더 분명하게 만듭니다. 주요 의사결정에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그 과정을 공정하게 운영합니다. 현재 슬로워크가 진행하고 있는 운영 가이드 정리는 그 핵심에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회사가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후에는 ‘슬로워크다움’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이를 구체화하고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반드시 공유를 통해 구성원들이 내재화하며, 외부의 이해관계자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창의적인 솔루션과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확대’라는 우리의 미션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디자인, 소셜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은 앞으로 더 단단해집니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디자인 및 기술 격차를 해결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고객과 함께 도전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저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소사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회지향적 디자인의 상징과 같은 분입니다. CCO의 자리에서 지금껏 잘 만들어 왔던 작업은 더 재밌게 만들고 또 우리만의 관점으로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던 반짝임을 되찾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슬로워크를 가장 잘 이해하고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이라 무척 든든합니다.
합병 이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받은 디지털 역량은 더 강화합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소셜벤처 및 비영리 단체의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디지털 전략을 강화하는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사회를 직접 혁신하거나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기술도 물론 포함됩니다.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디자인과 기술력을 갖춘 조직. 진정성과 열정, 역량을 갖추고 주변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구성원들이 많은 조직으로의 성장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슬로워크는 최근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전문가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분이 노력해 주신 덕분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조직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솔루션을 만드는 국내 최고의 조직이 되겠다는 다짐과 책임감을 다시 다져 봅니다.
우리는 로켓처럼 정해진 궤도를 따라 목표 지점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는 회사가 아니라, 같은 목표의식을 갖고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떠다니는 UFO 같은 조직입니다. 우리는 이 혼란을 따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야 구성원 스스로 우리가 만드는 제도와 방향에 대한 명분과 취지를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 참여한 구성원들 한명 한명이 조직을 함께 성장시키고, 함께 그 속에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처럼 우리 모두에게 잘 맞는, 세상에 없던 '우리만의 조직'을 만들어내길 기대해 봅니다.
좋은 말을 많이 했지만, 실은 하루라도 빨리 이 과정을 다 밟아 나가고 싶은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목표가 거창할수록 과정은 힘들고 안팎의 이해관계자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가 존재할 이유 역시 사라지는 것이기에, 힘들어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끝을 보기 전까지 더 많은 갈등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어제보다 오늘 악착같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한 발짝이라도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이 과정을 같이 견디고 노력해주는 동료들에겐 ‘조금만 더 함께 나아가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이 분야에서 가장 성과가 높은 훌륭한 팀원들이 모인 조직이니까요. 저는 우리가 세운 미션과 목표가 그저 허공에서 흩어지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심이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훌륭한 동료와 함께했기 때문에 이만큼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지금의 동료들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상상도 못 했던 멋진 조직 문화가 나오지 않을까, 벌써 기대됩니다.
지금 준비하는 작업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시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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