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가구이야기입니다. 아침부터 “90°(degree)"를 꺼내니 학창시절

수학 때문에 고생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수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무슨 공식을 그렇게 많이 외웠는지, 살아가는데 기본 셈만 할 줄 알면

되는데 말이지요.^^

 

수학처럼 복잡하고 무겁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생활을 꾸려가면서

많은 가구들을 삽니다. 이른바 장농표 가구들. 신혼살림을 꾸릴 때

의례적으로 구입하는 무거운 가구들. 몸을 조금 가볍게 해야 하는데

우리 살림살이는 너무 크고 넓지 않는지 90° 가구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에서 버려지는 가구들은 보면

아직 쓸 만한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아파트에 버려진 무거겁 큰 원목의자. 아직 쓸만 한 것 같은데...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90도 가구를 살펴 보겠습니다.



문짝 같아 보입니다. 평상시에는 벽에 적당하게 세워두시면 됩니다.
그러면 같이 문을 열어 볼까요?



합체되어 있는 가구를 분리해 봅시다.



90도 입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용도에 맞게 종이접기 절단표시처럼, 꾸부려서(^^) 움직여 봅시다.



수건이며 생활 용품을 비치할 수 있습니다.



책도 올려 놓고



출근할 때 입을 옷가지로 걸어 두면 90도 가구의 역할이 끝납니다.
그런데 이 한가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4가지 기능을 더 있습니다.
보시지요!!




컴퓨터를 설치하고 블로깅할 수 작은 책상 역할도 할 수 있고,




잠시 취침 할 수 있는 간이 침대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요리도 할 수 있는 작은 주방도 되었다가



각 종 취사 그릇을 비치할 수 있는 수납장 역할도....




90도이지만 360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가구.



4가지를 다 합체한 종합세트.

 
이사 갈 때 마다 버려지는 가구나 잡동사니를 떠올려 봅니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언제 구입했을까? 한 숨이 나오지만....

 

서울 강남에 잘 나가는 아파트에 가보면 정말 생생하고도 쓸만한

고급 가구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중고가구라지만 전혀 중고같지 않은 고급가구들...

 

죽어서까지 싸가지고 갈 것이 아니 다면 평상시에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어 살면

참 좋을 텐데. 사고, 버리고. 조금 작아지고 가벼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정치문화도 90도 가구처럼 90도만 사수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360도 가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 까요? 


 * 첨단을 달리는 IT복합가구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 가구의 디자인은 Designers: Louwrien Kaptein & Menno Bolt

 

Posted by slowalk

 

서울 김포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면 세상 어느 나라가 이럴까 싶도록 서울은 거대한 아파트 숲이다. 《아파트공화국》(발레리 줄레조 지음, 후마니타스)이라는 책에 보면, 이 고밀도 집적 주택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군사정권이 주도한 초고속 압축적인 경제개발 과정에서 아파트는 우리 생활에 등장해 중산층의 트렌드가 되었고 이런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아파트 나라가 되었을까. 새로운 아파트가 등장하던 순간들이 신문 광고와 언론기사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살펴본다.

 


1957년 서울에 등장한 최초의 아파트


1991년 11월 11일자, <경향신문>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아파트는 1930년대 일본인들이 서울 회현동에 지은 3층짜리 미쿠니아파트지만 우리 손으로 처음 지은 본격적인 아파트는 1957년의 종암아파트라고 한다.  1991년 11월 11일자 경향신문에 서울 종암동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이 아파트가 헐리게 되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주)중앙산업이 2천2백여 평의 대지에 2층~5층짜리 3개 동을 지어 현대식 아파트의 효시가 되었던 이 아파트는 준공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했고, 1960년대에는 영화배우, 대학교수 등의 주거지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민아파트로 변했고 슬럼화되었다가 결국 재개발을 위해 헐렸다.


1960년대

대한주택영단(1962년에 대한주택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의 아파트 건설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온돌방 좌식 생활에만 익숙한 우리 주거생활에 입식 구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1년에 공사를 시작해 1964년에 완공된 서울 마포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단위 단지형 아파트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이 아파트는 입주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수도관과 난방 파이프가 얼어터지는 등 적잖은 물의를 빚었다. 동아일보에 실린 ‘한국인의 초상’(1995년 5월 26일자)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옛 마포형무소 농장터(지금의 삼성아파트 자리)에 선 국내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마포아파트는 군사정부의 야심찬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일환이었다. 애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0층으로 계획되었지만 “전기 사정도 나쁜데 엘리베이터가 뭐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중앙 난방이 뭐냐”는 비판 여론에 부딪쳐 6층으로 수정되었다. 서울시 수도국으로부터 “마실 물이 귀한데 수세식 화장실이 뭐냐”는 반대도 있었다.


1962년 12월, 1차로 450가구 29.7~49.5㎡(9~15평형)가 준공돼 입주 신청을 받았지만 분양은 10분의 1도 안됐다. 태반이 빈집이었던 데다 겨울 한파에 파이프가 동파되는가 하면 연탄가스 소동도 있었다. 입주자들이 연탄가스 배출이 잘 되지 않는다며 불안해하자 주택공사 측은 방마다 실험용 쥐를 풀어놓고 안전시험을 하는가 하면, 현장소장은 신경쇠약증에 걸렸고, 건축부장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인체실험을 하겠다”며 술을 마시고 가스가 가장 많이 샌다는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다. 한편, 1960년대 말부터 생기기 시작한 한강변 아파트들은 중앙 공급식 난방 시설을 갖춰 중산층의 아파트 선호 문화를 이끌었다.

 

제일 싼 것은 6층, 가장 비싼 것은 1층 - 마포아파트
마포아파트는 마포구 도화동의 대지 1만4천1백 평 위에 총건평 6천4백 평의 ‘Y’자형 6층 건물 6동(5동만 준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공사비 2억 3백만 원을 들여 9평짜리 방 3백 42개, 12평짜리 72개, 15평짜리 36개 도합 4백 50가구를 수용토록 할 것이다. 이번 입주자는 준공된 5동에 들어갈 사람들이다. ‘아파트’ 내부의 크기는 제각기 다르지만 각 가구마다 침실 거실겸 응접실 부엌 ‘발코니’가 각각 하나씩 마련되어 있다. 내부 시설은 ‘샤워’식 목욕탕, 수세식 변소, 연탄으로 물을 끓이는 ‘스팀’ 시설 그리고 건물 전체 시설로 ‘엘리베이터’와 자가 발전기가 시설되어 있으며 각 가구로 수도물을 급수하는 1천 입방 ‘미터’의 물 ‘탕크’가 옥상에 마련되어 있다. (중략) 제일 싼 것은 8.7평짜리의 6층인데 임대료가 1천8백80원(월액수)이고 가장 비싼 것이 15.3평짜리의 1층으로 임대료가 매달 4천2백30원이란 엄청난 값이다. 12평짜리는 1층에서 3층까지의 임대료가 3천 원에서 3천4백 원까지이다. 1962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

 

1963년 1월 11일자, <경향신문>

 

와르르 죽음의 굉음
한 부실업자의 날림공사를 묵인해준 서울시 당국의 과오로 하루 아침에 60여 명의 주민들을 생매장시킨 끔찍한 참사가 발생, 백주의 생지옥을 빚어냈다. 15세대 65명의 입주자 전원이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아파트 철근벽 속에 깔려 아비규환을 이룬 사고현장은 급거 출동한 군.경 및 시 작업인원 등 8백여 구조대원들과 생사를 확인하려고 몰려든 입주자 가족들의 울부짖음으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생지옥을 이루고 말았다. 1970년 4월 8일자, <매일경제신문> 

 

970년 4월 8일자, <동아일보>

 

1970년대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인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를 계기로 민간업체들의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고 대규모 단지 개발 방식이 확산되었다. 도시의 주거 형태가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에서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서울 잠실, 반포 등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선 것도 이 시기였다. 또한 특혜분양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건립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한국 최초의 중앙식 중온수 종합보일라 설치” “산뜻한 알미늄창 장식”
   “어린이 놀이터, 정원, 주차장 완비” “침대 생활 양식”

 

1969년 10월 6일자, 신문 광고

 

“정서어린 새마을, 격조 높은 아파트”

 

1970년 8월 20일자, 신문 광고

 

“대단위 주거지역, 온수 공급 시설, 양변기 설치,
    전화배관 배선 및 TV 공통 안테나 시설”

1971년 4월 24일자, 신문광고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5년 9월 15일자, 신문 광고

 

“선진형 시범 아파트, 가장 실용적인 아파트, 불편 없는 생활 여건 완비 (유치원,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등)”

1976년 10월 28일자, 신문 광고

 

1980년대

서울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대단위 개발사업이 늘면서 부동산 투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정부는 투기대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지만 투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 목동 신시가지, 상계 신시가지, 과천 신도시 등이 개발되고 1989년에는 서울 근교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분양광고에 여전히 ‘누수 없는 욕실’이 강조된 점이 눈길을 끈다. 

 

 ● "누수가 없는 욕실, 집중 교환식 인터폰 ... 교육과 생활시설이 보장된 주위환경"

1980년 6월 7일자, 신문 광고

 

 ● "도심의 공해에서 벗어난 전원 도시"

1981년 5월 17일자, 신문 광고

1984년 8월 22일자, 신문 광고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통해 건축 기술과 마케팅 노하우를 쌓은 민간 건설업체가 주택시장의 중심에 서면서 민간 주도의 아파트 공급 체계가 주된 흐름이 되었다. 1997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동네 이름이나 건설사 이름을 아파트 명칭으로 사용하던 흐름이 바뀌어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고 품질 경쟁이 시작되었다. 1999년 말부터 서울 도곡동 아크로빌, 타워팰리스, 여의도 트럼프월드, 목동 하이페리온 등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등장했다. 

 ● 69층, 국내 최고 

 ●어디 사십니까?

 

2000년대

건설사들의 아파트 브랜드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친환경, 프리미엄, 최첨단 홈네트워크 아파트, 초고층 주상복합, 초대형 복합단지 등을 내세워 나름의 상품성과 이미지를 강조한 아파트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에서 더 나아가 마치 옷처럼 혹은 문화처럼 나와 내 가족의 ‘수준’을 가늠하는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참고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종암에서 힐탑까지 1세대 아파트 탐사의 기록》(장림종·박진희, 효형출판), 《아파트 공화국-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발레리 줄레조, 후마니타스),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광고정보센터의 광고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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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은정씨 밥상이야기

 

맞벌이 부부의 저녁

 

저녁 6시 반, 김은정 씨는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다. 맞벌이 부부인 그녀는 두 아이, 시부모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맞벌이 부부라 시간이 부족한 김은정 씨를 대신해서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아직도 부엌살림의 대부분을 도맡다 시피 하고 있다. 이날도 김은정 씨가 도착하기 전부터 시어머니가 저녁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결혼 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살림은 한 1년 정도 밖에 안 한 것 같아요. 시장에 가도 저보다야 살림경험이 많은 시어머니가 더 많은 것을 아니까 그 선택에 많이 따르지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장보기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 가족의 장보기는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 밥상 먹을거리는 시어머니가, 아이들과 가족들 간식거리 장보기는 남편이 따로 따로 챙긴다. 시어머니는 근처 스포츠센터 지하에 있는 대형슈퍼에서 배달을 시키고, 남편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차를 이용해 대형마트에 가서 아이들 간식거리들을 사가지고 온다.

 

“차가 없었을 때는 남편이랑 저랑 둘이 버스타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곤 했어요. 아무래도 차가 없으니까 한번에 5만 원어치 이상 사오기 힘들죠. 가지고 오기가 힘드니까. 근데 차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한 번 갈 때마다 10만 원 이상씩 사게 되더라구요. 힘들게 들고 와야 하는 부담이 없어지니까 카트에 가득 물건을 사게 되죠. 너무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아서 이젠 남편 혼자 보내요. 간식거리나 고기만 사오라고 하면 4,5만 원 어치 사오는 선에서 조절되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10여 년 전만해도 집 근처 재래시장을 이용하곤 했단다. 그러다 대형마트가 생기고 배달이라는 편리함이 생기자 이제 재래시장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평생을 집에서 살림만 했던 시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치 장을 보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대신 하루하루 대형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그때그때 사오는 장보기를 한다. 마트에 가면 한 가지 제품에도 여러 가지 상표가 있는데 무얼 기준으로 고르냐고 묻자 ‘브랜드’라고 대답한다. 제일 유명한 상표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것을 고른다고. 장 볼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건 가격이지만 믿을 만 하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먹어야 한다는 판단이 조금 앞서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20개

 

김은정 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아무래도 3대가 함께 하는 밥상이고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밥상이 조용할 리가 없다. 딸아이는 연신 ‘진수성찬’이라며 좋아하고, 막내는 엄마 품에서 밥숟가락을 휘두르며 까르륵 장난치는 통에 밥알들이 툭툭 떨어진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당연한 듯이 텔레비전을 켜 놓고 프로야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밥상에 오른 반찬들은 김치 몇 가지와 조기구이, 갈비구이, 호박전 등이다.

 

“남편은 고기를 좋아하고 시아버지는 생선을 좋아해서 밥상에 늘 생선과 고기가 올라가요. 고기가 없으면 햄이나 달걀 프라이라도 꼭 있어야 밥을 먹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하네요. 그래서 냉장고에 늘 고기가 두 근 정도씩은 들어 있고 생선도 20마리에서 50마리까지 항상 냉동실에 있어요. 일주일에 30마리 가까이 먹기 때문에 그 정도 양은 있어야 해요. 김치도 네 가지 종류가 항상 준비되어 있구요.”

 

이 집은 679리터 냉장고와 202리터 김치냉장고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냉장고도 좀 모자라다고 느낄 때가 있단다. 특히 생선이나 고기가 냉동실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 냉동실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깎는 사이 남편과 아이들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밥 먹고 나면 저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아이스크림 20개를 사와도 이틀이면 모두 먹어요. 간식으로 먹는 요구르트는 일주일에 25개 정도이고 쥐포나 오징어, 스프와 토스트도 간식으로 꼭 먹어요. 탄산음료와 우유, 과일주스는 항상 냉장고에 있는 편이죠. 탄산음료는 남편꺼고 과일주스와 우유는 아이들, 어머니와 저는 효소를 먹어요. 일주일에 탄산음료 세 병, 과일주스 두세 병, 우유 1.8리터 두 병 반 정도 먹는 것 같아요. 대신 과자나 라면은 거의 먹지 않구요.”

 

낮에는 가족들이 제각각 나가 있으니 이런 간식들을 먹는 시간은 대부분 저녁식사 뒤가 된다. 그러다보니 저녁식사 뒤부터 잘 때까지 계속 무언가를 먹고 있는 상태가 된단다.

 

 

 

다양한 음식을 해먹이고 싶어요

 

김은정 씨는 밥상에서 바꿔 보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으니 ‘더 다양한 음식들을 해먹이고 싶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가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기 때문이다. 중식, 양식도 모자라 타이, 이탈리아에 인도 음식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음식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늘 먹는 밥이며 국, 김치가 식상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다양한 음식은 아이가 커서 하루에 한 끼니 이상 외식을 하기 전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그렇게 다양하게 보이는 다국적 음식들의 퍼레이드 속에서도 먹을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가서 정말 먹을 것이 없는 것과 없다고 느껴지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고 말이다.

 

어릴 적 밥상과 지금 밥상에 가장 큰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는 역시 ‘고기’가 올라왔다. 어릴 때는 같은 여섯 식구가 둘러앉아도 고기 한 근을 한자리에서 다 못 먹었는데 지금은 집에 고기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먹을거리에 비상이 걸렸다. 조류독감에 광우병 쇠고기까지 부엌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보도가 나와서 요즘에는 돼지고기나 해산물을 주로 먹어요. 아무래도 불안하잖아요.”

 

그러나 구제역이 발생한다면, 기름유출 사고처럼 해양오염이 심각해진다면, 이 역시 안심하기 힘들 것인데 그렇다고 모두 채소만 먹고 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래저래 김은정 씨의 걱정들은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다.

 

 

 

 

 

#2  김정숙씨 밥상이야기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좀 덜 해졌어요

 

낮 12시가 되자 김정숙 씨는 점심식사 준비에 부산하다. 오늘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오전수업만 하고 돌아오는 날이라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 학교급식이 나오긴 하지만 아토피가 있는 아들에게 좋지 않은 밀가루 음식이라 집에서 밥을 먹으라고 해 놓은 상태이다.

 

자다가도 아이가 긁는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김정숙 씨의 마음은 아토피 아이를 둔 모든 부모들의 심정일 것이다. 식이요법을 하고 있으니 먹을거리에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가입한 한살림은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주문한 물품을 공급받는다. 다행히 근처에 한살림 매장도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 운동 삼아 다녀오기도 한다. 아이가 아프기 때문인지 역시 장 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식품에 유해물질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유기농식품을 먹기 시작한지 한 10년 넘은 거죠. 처음에는 모든 물품을 이용했어요. 음료수, 과자, 빵에서 가공식품까지, 새로 나오는 모든 물품을 다 이용했죠. 그때는 라면도 종종 먹었구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가공식품은 역시 가공식품이고, 과자는 어떻게 해도 과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때부터 설탕이 들어가 있는 음료수나 과자를 안 먹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아이 아토피가 심해지면서는 육류도 별로 안 좋구나 싶어 안 먹고 있죠. 아이가 아픈데도 오히려 먹을거리가 건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란 생각이 좀 덜해졌어요. 전에는 먹는 것에 무척 집착해서 가족이 아프면 먹는 걸로 다 해결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이젠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아이가 밖에서 잘 뛰어놀고 행복해하고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 만난 어느 귀농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의 건강에서 먹을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 안팎이라고. 나머지는 깨끗한 물과 공기, 가족과의 유대감 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귀농자들은 가공식품에 대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만큼 예민하게 굴지 않는다. 새참으로 초코파이를 먹고 집에서는 사탕도 먹고 라면도 별식으로 끓여먹는다. 도시에서 먹을거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먹을거리 말고 삶의 방식을 바꿀 적당한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은 아닐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

 

 

김정숙 씨의 아이는 12시가 좀 넘자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와 아이가 밥상에 둘러앉아 단출한 점심을 먹는다. 밥은 현미와 잡곡을 섞은 현미잡곡밥에 연근조림, 오이소박이, 브로콜리 등이 놓였다.

 

“유정란이나 유제품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채식위주로 밥상을 차려요. 종교적인 이유나 사회적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때로 밖에서 고기를 먹기도 하죠. 특히 남편은 주말이면 고기를 한 번씩 먹자고 했어요. 남편은 생선도 고기로 안보거든요.(웃음) 아이가 아프기도 하고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집에서 식사를 안 하기 때문에 이런 밥상에 대한 불만은 나타내지 않아요. 안 그래도 밖에서 밥을 먹게 되면 늘 고기를 먹잖아요.”

 

아이는 까슬까슬한 잡곡밥이나 기름기 없는 반찬이 익숙한 듯 밥을 맛있게 먹었다. 아토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입맛이라 햄이나 고기가 없어도 섭섭해 하지 않는 눈치이다.

 

아침은 7시와 8시 사이에 먹고, 저녁은 6시 전후로 해서 먹는다. 저녁 이후에는 간식을 먹지 않고 일찍 잠을 자는 게 이집 하루 일과이다.

 

“아이 간식으로는 떡이나 과일, 두유를 줘요. 특히 떡을 많이 주죠. 떡은 남편 아침식사로도 주기 때문에 냉장고에 항상 떡이 있어요. 남편은 현미가래떡을 주고 아이는 인절미나 증편을 주죠. 여름에는 감자나 옥수수를 쪄주고, 겨울에는 고구마를 참 많이 먹었어요. 음료수 같은 건 따로 먹는 게 없구요. 아이 간식 때문에 떡 사러 매장에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하루에 200그램짜리 떡 한 팩 정도를 먹는데 모두 낮에 먹고 저녁에는 먹지 않아요.”

 

저녁 먹고 잘 때까지 시간이 긴 편이라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진 않을까 궁금했다. 혹시 억지로 먹지 못하게 하려고 엄마와 아이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 이 실랑이를 잠재우는 비결은 오히려 간단한 곳에 있었다. 바로 일찍 잠자기.

 

“전에는 우리 집 아이가 지각을 자주했어요. 유치원 다닐 때는 늦게 일어나고 해서 아침밥을 잘 못 챙겨 줬거든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좀 일찍 자고 일찍 깨우자 마음먹고 일찍 재우기 시작했어요. 일찍 일어나서 30분 이상 움직이니 아이가 배고파서 아침밥을 먼저 찾아요.”

 

엄마가 점심상을 준비하는 동안 가래떡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아이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떡’이라는 대답이 술술 흘러나온다. 분명한 건 모든 아이들이 과자며 햄버거, 피자를 태어날 때부터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엄마, 아빠가 먹는 것을 같이 먹고 그 식성을 따라 배운다. 아이의 식성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부모의 먹을거리를 살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반가운 한 마디 “엄마 밥 줘!”

 

 

시골에서 자란 김정숙 씨의 어릴 적 밥상은 밥과 김칫국 그리고 몇 가지 나물이 전부였다. 달걀도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는 농번기에 힘들 때 어쩌다 한 번 먹는 음식이었다. 과일도 사철 먹지 못했다. 집에서 수박농사를 한 덕에 먹을 수 있었던 수박이 과일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한세대 만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기를 먹고, 과일은 늘 먹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풍족한 밥상으로 변화했다. 이 넘쳐나는 먹을거리 속에서 김정숙 씨도 밥 대신 라면이나 밀가루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밥을 열심히 먹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단다.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으면 밥상을 차리는 일에 이렇게 열심히 정성을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밥 줘!’하는 말이 반갑다고 했다.

 

배고프면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뿌듯하다는 그 집 밥상에 오늘은 무엇이 올랐을지 궁금하다.

 

 #3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귀농학교를 다닐 적 한 선생님은 생태적으로 사는 법을 말하다가 “한 끼 밥상에 세 가지 이상 반찬을 놓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쓰레기 버리지 마라, 물 아껴라 이런 말만 듣다가 반찬 이야기를 듣자 무척이나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밥상이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먹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이 기름진 밥상의 변화는 우리의 욕망과 세계의 욕구가 한데 엉켜 만들어진 합작품들이다. 이제 밥상은 그저 배고픔을 채우는 일이나 개인의 입맛에 맞춰 무언가를 골라먹는 일이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만 봐도 먹을 것이 단순히 먹는 문제로만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느냐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좀 심각하게 생각해 봐도 좋지 않을까.

 

김은정 씨 가족 일주일치 먹을거리

 

가족 수: 6명

주거형태: 아파트

음식저장: 냉장고(679리터 냉장고, 202리터 김치냉장고)

 

고기: 1.75 킬로그램

생선 : 21~28마리

요구르트: 5줄짜리 묶음 5개 (25개)

아이스크림: 70개

쥐포와 오징어: 22마리

과일: 사과와 참외 35개

음료: 탄산음료 1.5리터 3병, 과일주스 3병,

우유 1.8리터 2개 반 통

봉지스프: 7개

식빵: 1봉지

일주일치 식비: 10~12만 원


 

김정숙 씨 가족 일주일치 먹을거리

 

가족 수: 3명

주거형태: 아파트

음식저장: 냉장고(679리터)

 

고기: 없음

생선: 2,3마리

떡: 현미가래떡 1팩, 인절미나 증편 7팩 (200그램 기준)

과일: 토마토나 참외 7~14개

두유: 7개

일주일치 식비: 4~7만원


 

 
우리 집은 무엇을, 얼마나 먹고 있을까?

 
<헝그리 플래닛>이란 책에 있는 식재료 분류표를 알려드립니다.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적어보고 확인해보세요. 무엇을 먹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 될겁니다.

 
“잘라내어” 부엌에 붙여놓고 보세요

 

 

*** 우리집 먹을거리 가계부***

 

 

*참고도서
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기,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절, 페이스 달뤼시오 지음, 김승진 옮김, 윌북


 

Posted by slowalk

 

 

 



아이들이 공을 차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골목길, 군데군데 모여 앉아 소꿉장난이랑 공기놀이를 하는 여자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던 골목길.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그곳에 이제는 자동차가 들어섰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차 빼라”는 소리로 아침이 시끄럽다. 차 댈 데가 정해지지 않아 물 양동이  2개로 자리를 먼저 잡아놓느라 이웃끼리 감정 상하는 일도 생긴다. 타이어에 자물쇠 쇠고랑을 채워 집 앞에 ‘떡’ 하니 자리 찜을 해놓기도 한다.
 

새벽에 ‘차 빼라’ 하며 난리치는 일도 싫고, 오래 사용한 차를 바꾸자니 목돈 몇 천만 원이 들어가는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설현정 씨는 그 참에 ‘차 나눠 타기 운동’을 하는 ‘차두레’ 회원이 되었다.


‘차두레’는 독일의 카 셰어링 사례를 보고 온 몇몇 사람들이 작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낸 차 나눠 타는 모임이다. 도시 생태공동체 마을을 만들어가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용기 있는 실험이었다. 2007년 10월 7일 첫 승차를 시작으로 올해 7월에 제3기가 시작됐다. 매년 7월에 회원갱신을 하는 이 모임은 연 20만 원 회비를 내면 1년에 9인승 승합차 한 대를 6가구가 번갈아 나누어 탈 수 있다. 단 기름 값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설현정 씨는 지난해 가을에 제2기에 합류했다. 일곱 살 난 아들을 둔 그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놀만한 공간도 없고, 집을 나서면 지나는 자동차에 행여 다칠까봐 늘 마음에 걸렸다. 물론 자동차 한 대를 운행하면서 드는 비용도 부담이 되고 아깝기도 했다.


그는 주로 가족여행이나 춘천 시댁에 다니러갈 때 이용한다. 거의 한 달에 세 번 꼴이다. 남편도 만족한다. 회사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고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니 차를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차두레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주로 휴가나 명절 때, 단체회원인 성미산학교는 평일 소규모 학생 체험행사 때 사용한다.


 

 

그가 처음 차 나눠 타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섰을 때, 마음 한 편엔 이용이 순조롭지 않고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내 차처럼 편안하고 간단했다. 계속 사용하면서 차 나눠 타기가 불편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편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여섯 가구가 차 한 대로 불편없이 나눠 탄다


차 나눠 타는 일이 보기에 흥미가 있고 의미도 있어 보이지만 대부분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게 쉽지 않은 듯하다. 여섯 가구가 자동차 한 대를 사용하는데 과연 겹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을지가 제일 걸리는지 처음 묻는 말이 “그거 필요할 때 정말 탈 수 있어요?”다. 처음 시작할 때 설현정 씨도 그 점이 가장 걱정이었다. 하지만 첫 예약 때 별 일 없이 예약이 되었고 시댁에 편안하게 다녀오고 난 후 “와! 정말 되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겹치면 양보하기도 하고 다행히 일정이 빗겨 정해지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차두레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모든 것이 원시적인 운영방식이었다. 운행일지, 연락, 주유 기록 등 모든 것을 수기 장부에 기록했고, 이용할 때마다 총무에게 전화하여 예약하거나 주유나 청소 수리에 관해 말로 보고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FMS라는 카 셰어 관리시스템 단말기를 장착하면서 이용과 관리가 훨씬 쉬어지고 간단해졌다.


설현정 씨는 춘천 시댁에 가려면 먼저 일주일 전에 차두레 FMS 홈페이지에 예약을 한다. 당일엔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차고지에 가서 차를 가져온다. 출발할 때 단말기에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차를 운행한 거리를 단위로(km당 300원) 사용한 휘발유 가격을 계산할 수 있고, 중간에 주유를 하면 주유 버튼을 누르고 주유 가격을 입력하면 나중에 그 영수증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돌아와서는 시동을 끄는 순간 사용시간이 끝난다. 집에 짐을 내리고 남편은 차고지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의 쓰레기를 줍거나 간단한 청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그가 처음 차 나눠 타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섰을 때, 마음 한 편엔 이용이 순조롭지 않고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내 차처럼 편안하고 간단했다. 계속 사용하면서 차 나눠 타기가 불편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편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차를 빌려 타는 것과 나눠 타는 것이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계산기를 두드려볼 때 그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처럼 날이 뜨거울 땐 우리집 7살 아들이 걱정돼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아이가 노인이 되고, 손자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구가 너무 뜨거워져 땅을 디딜 수 없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지.”
환경을 생각하며 보통과 다른 생활방식을 해보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뜨거운 지구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출발할 때 단말기에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차를 운행한 거리를 단위로(km당 300원) 사용한 휘발유 가격을 계산할 수 있고, 중간에 주유를 하면 주유 버튼을 누르고 주유 가격을 입력하면 나중에 그 영수증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마을에서 지구를 구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마을에서 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겸손해 하는 설현정 씨는 사실은 성미산지킴이 운동시절부터 7년 간 성미산마을 만들기를 함께 해온 오래된 활동가다. 하지만 나이 20대 말 즈음 ‘성미산’에 참여할 당시에도 그는 막내였고, 30대 초반의 지금도 역시 막내다. 처음에 이곳에 우연히 이사를 와 아는 분을 통해 성미산지킴이 운동을 시작했지만 노동조합활동을 해온 그에겐 마을을 지키고 마을을 만드는 일이 그리 큰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환경운동이나 지역운동이 남의 일 같았다.


성미산지킴이 대책위 간사를 하면서도 ‘성미산이 뭐 그리 중요하기에 저렇게 별나게 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미산을 살펴보는 모니터 활동을 위해 그는 산에 올라가 다니면서 자연, 나무, 햇빛, 새소리가 자신을 위안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적인 게 아니라 가슴으로 피부로 느껴지는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삶에서 나와 다른 인종들이 하는 것이 별나고,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하면서 환경을 지키는 일이 일상으로 들어오고 이렇게 안 하면 불편해지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사람들이 그를 바꿨다.


요즘엔 마을의 9가구와 함께 녹색가정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다. 탄소발생을 줄여서 성미산 하나를 만드는 효과를 내보자는 에너지 시범마을 만들기 활동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한 달에 두 번, 전기와 가스 사용량을 확인해서 얼마를 줄이는지 가늠해보는 에너지 절약 소모임 운동이다. 환경정의로부터 도움을 받고 진행하는 것으로 실적이 좋은 가정엔 상도 있다. 그의 아들도 에너지 절약이 생활에 뱄는지 잠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컴퓨터 멀티 탭을 끄기도 한다.


그의 직업은 지역의 복지공동체 활동가다. 2005년 지역네트워크로 시작해 올해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한 마포희망연대에서 상근활동을 한다. 지역 어르신 돌봄과 결연, 청소년 멘토 활동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활동을 한다.


그에게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나누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돈이나 사회적 관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품고 있다.
성미산 마을에 터를 잡아 성미산을 지키고 도시공동체를 만들고 차두레에 참여하여 차를 나눠 타고,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텃밭상자를 나누고…. 모두가 그에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글,사진 우미숙(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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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lo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