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굴러가기 위해 종종 눈물을 머금어가며 하는 디자인 작업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심오한 정치적 메세지까지 아우러 담으려는 슬로워크의 노력은 각 디자이너의 개인 프로젝트라는 기회를 통해서도 실행이 되어갑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슬로워크 내부 워크샵에서는 조직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어떻게 하면 슬로워크가 착하면서도 영리하게 '디자인'이라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각자의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도 나누었는데요. 회의 중, 블로그에 개인 프로젝트 구상에 대해 올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립니다. 저 토종닭은 4가지의 개인 프로젝트 구상을 하였습니다.
1. 런치박스12 캠페인
런치박스12는 도시락 문화 조성 캠페인입니다. 저 토종닭은 지난 3월 슬로워크에 입사하기 전에는 72키로를 육박하는, 불필요한 살을 많이 달고 있는 육체의 소유자였습니다. 4월에 슬로워크가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를 하고, 점심을 해먹기 시작하면서 좀 더 건강한 식단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살을 제거하고 지금은 67키로의 건강한(?) 몸을 되찾았습니다. 밥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원고료 대신 주시는 현미쌀과 회사에서 제공하는 쌀로 짓고, 반찬만 한 가지씩 만들어와 나눠먹으니 가계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뭐 먹지'하는 고민도 할 필요가 없어졌고요.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으면 건강해지고, 가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미 도시락을 싸가는 사람들은 있고, 결국 할 사람만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좀 더 실행가능한 과제 부여와 참여를 유발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런치박스12은 그 이름에 캠페인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년 12달, 한 달에 12일은, 도시락을 먹자, 언제? 12시에'.
캠페인 키트를 만들어 도시락 캠페인에 참여함을 알리고, 슬로워크의 Vote for Green과 같이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웹사이트, 플랫폼)을 만들어 서로의 도시락 사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가 아닌 서로의 '건강한 식습관, 노하우 등을 공유하는 것'으로 발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 서로의 도시락 사진을 올려 '이 달의 도시락'을 선정하거나, 꾸준히 도시락 사진을 올리는 참여자께 상품을 드리는 등 다양한 방법의 참여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말에는 베스트 12 레시피를 선정하여 달력 등으로 제작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2. Creativity = Light Bulb 다이아그램 포스터
디자인 일을 하다보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좋은 아이디어 좀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그 뒤에 꼭 붙는 한 마디가 더 있습니다. '빨리요'. 슬로워크는 이름과 달리 굉장히 빨리 움직이게 됩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를 통틀어 '머리에 무엇인가 번쩍이며 드는 엄청난 생각'이 '창의적/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누군가가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표현할 때 전구를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는 어느날 갑자기 번쩍 떠오르는 영감같은 것이라는 선입견이 더욱 강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저 토종닭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재정리하여 놓는 것이 이를 접하는 이를 하여금 새롭게 읽는 시각이나, 방법을 요구하게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 저것을 시도해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요. 에디슨의 전구도 '반짝'이며 빛을 만들기 전에, 이를 위해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는 긴 시간과 금전적 투자를 필요로 했죠.
그래서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좀 더 충분한 일정을 호소하는 포스터를 만들어보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전구가 번쩍이기까지의 과정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전기 생산에 필요한 화석연료와 그 자원이 축적되기까지의 시간은, 디자이너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느끼고, 또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 지식이 될 수 있겠고요..
이 포스터에 대해 생각할수록 드는 생각은,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렴풋이는 잡히지만, 클라이언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 프로세스를, 좀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해봐야 잘 표현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3. 핵 포스터
작년 입사 후, 계획했던 프로젝트지만, 바쁜 일정과 읽으면 읽을수록 방대하게만 느껴지는 핵 관련 자료를 핑계로 지금까지 미뤄왔습니다. 핵에 관련된 불편한 정보들을 모노폴리 보드 게임판의 형태로 보여주어, 땅따먹기 식으로 진행되는 핵 관련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4. 흑과백 포스터
흑과백 포스터는 우리 시대의 허세로 인해 생긴 뭔가 에매한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말에 출근하다보면 커플들로 가득찬 삼청동을 목격하게 됩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우연히 한 커플의 대화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 우리 뭐 먹어?
남자: 짜장면 먹을까, 아님 짬뽕.
여자: 데이트잖아.
남자: 그럼 파스타나 피자?
여자: 그래~
극단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본 장면입니다.
남자가 짜장면 먹자고 할 때, 급격히 안 좋아지는 여자의 표정과,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남자가 다시 파스타나 피자를 먹자 얘기할 때 조금씩 펴지던 표정을 보며 저는 메뉴를 통해 상반된 데이트가 정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왜 짜장면이 파스타보다 못할까. 이것도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선입견과 허세가 빗어낸 결과는 아닐까..
저 토종닭은 어린 시절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대학 졸업까지의 시간을 한국 밖에서 보냈습니다. 이 시간은 한국적이지도 않은, 서양적이지도 않은, 에매한 세계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3년 전 한국에 처음와서 지금까지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그것에 대한 특정 선입견이 구체적으로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이야기처럼 '데이트를 할 때는 특정 메뉴 이상의 음식을 먹어야 이상적이며 적정기준 이상의 로맨틱한 데이트다'라는 생각도 대중의 선입견 중 하나이겠지요. 짜장면 뿐만 아니라 김밥 한 줄로도 이상적인 데이트가 가능할텐데, '남들이 다 이 정도는 하니깐', '그래도 데이트인데 이 정도 가격대는 먹어야지'라는 선입견이 무심코 대중들에게 계속 주입되고 '이상적인 데이트'의 기준을 한낱 메뉴따위가 좌지우지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뉴질랜드에 있는 형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형과 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형의 던진 말이 이 포스터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뭐야 xx, 거의 똑같은 면 위에, 하나는 검정 소스, 하나는 하양이나 빨강 소스 부은건데, 꼭 하양이나 빨강소스가 뿌려져야 데이트 음식이야?'
이 포스터는 검정 짜장면과 하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비교하며, 남들의 시선에 의해 무심코 생겨난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 만족할 수 있는 가치는 개개인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물론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먹는 것이 무조건 허세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들의 시선을 벗어나, 짜장면 한 그릇과 김밥 한 줄로도 이상적인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가끔씩 먹게 될 수도 있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는 더욱 특별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 토종닭의 4가지 아이디어였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by 토종닭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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