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제주에 가게 되었나
슬로워크 생산성 엔지니어로 들어온 지 넉 달. 그동안 일을 하며 끊임없이 고민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같은 팀에 시니어 엔지니어가 없다는 점. 내가 속한 오렌지랩에는 개발자가 나 혼자다. 시니어 엔지니어가 없더라도 업무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 개발자가 있다면 서로 실패와 성공의 경험도 나누고 노하우도 전수받으며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팀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다른 팀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개발자가 많긴 하지만, 겹치는 업무가 별로 없는 데다 각자 맡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어 피드백을 요청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이 깊어갈 때쯤, 오렌지랩의 리더인 펭도님이 슬로워크의 대표이자 개발자 선배이기도 한 시스님과의 면담을 제안해주셨다. 내가 원하는 개발자의 모습은 어떤지, 좋은 개발자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시스님이 외부 개발자를 많이 만나볼 것을 추천해주셨다. 슬로워크와 한 가족인 빠띠의 달리님이 그중 한 명이었는데, 마침 빠띠에서 진행 중인 3주짜리 코딩캠프의 마지막 주차를 함께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아니, 다른 개발자들과 코딩캠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무려 제주도라니!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나. 바로 가겠다고 했다.
(용눈이 오름)
코딩캠프는 월요일부터 시작이었지만, 나는 이틀 전인 토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 가는데, 우선 놀아야지! 토요일엔 김영갑 갤러리를 갔다. 용눈이오름과 제주의 바람을 담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왔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일요일엔 일어나자마자 서핑을 했다. 태풍의 영향 때문에 파도가 높아서 서핑할 맛이 났다. 덕분에 팔과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코딩캠프 내내 화상약과 수딩젤을 바르며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창문 너머 보이는 푸른 바다가 일품!)
신입개발자, 제주에서 코딩하다
드디어 시작된 월요일, 코딩캠프의 시작이다. 오전에는 각자 회사 업무를 했다. 슬로워크는 워낙 원격근무가 활발하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들과 떨어져 일해도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코딩캠프가 시작됐다. 주로 표선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진행되었는데, 공간도 아늑하고 전경도 멋졌다. 코딩캠프에 참여한 다른 빠띠 개발자들과 처음 만나는 거라, 처음엔 거의 한시간 반 정도를 자기소개와 기대하는 것을 말하는 데 썼다.
내가 기대했던 건, 1) 슬로워크에 적용할만한 디지털 보안규정 사례 듣기, 2) 다른 개발자와 페어 프로그래밍 하기, 3) 빠띠 개발자와 친해지기 이 세 가지였다. 개발자들만 모인 자리라 “우리 전처리기만 돌리다가 끝나는 것 아니냐", “이거 끝나고 컴파일도 하는 거냐"하는 개발자 전용 농담이 난무했고 그게 무척 즐거웠다.
(자주 갔던 카페의 주인님이 노트북으로 찜질 중)
물론 농담이나 하며 놀기만 했던 건 아니다. 현재 빠띠와 슬로워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프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왜 직접 만들지 않고 돈을 주고 서비스를 쓰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은 엔지니어가 할 만한 일을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날 가장 신났던 것은, 빠띠 동료들이 내 개인 프로젝트를 보고, 괜찮은 프로젝트라며 깃허브(Github)에 별을 달아주고 기능제안까지 한 일이다. (슬로워크에서는 서로의 개인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주작러'라는 소모임을 하는데, 그곳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평소에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타이머를 설정해두고 일을 하는데, 작업을 작은 시간 단위로 쪼개서 작업하고 강제로 회고를 하도록 하는 타이머를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다. 더 추가하고 싶은 기능도 있지만, 최근에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피드백을 받고 나니 더 힘이 났다.
(깨알 홍보: https://github.com/ErickRyu/Powerdoro)
(코딩캠프를 함께한 빠띠 개발자 초록머리님과 켄타님)
둘째 날엔 모놀리딕(monolithic)과 마이크로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켄타님이 커리큘럼을 구성해 온 ‘dapp 101’을 진행했다. 블록체인은 나와 거리가 먼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dapp을 만들게 되다니. 프레임워크도 있는 데다, 켄타님이 커리큘럼을 잘 정리해주셔서 하루 만에 간단한 투표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여전히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이 프로그램에 적절한 기술인지 이해는 잘 안 갔지만, 블록체인 세계에 한 발 쓱 담가본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썼으니 저녁은 맛있는 음식으로. 제주에 왔으니 회를 먹었다.
(달리님 댁으로 가는 길에 찍은 구름)
광복절이었던 셋째 날, 빠띠팀은 다른 날 대체휴일로 쉬기로 하고 평소처럼 일을 하고 나는 주로 개인 작업을 했다. 저녁에는 달리님 댁에서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매일 그랬지만, 달리님 댁으로 가는 이날 따라 특히 구름이 너무 예뻐서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드디어 도착한 달리님 댁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었는데, 달리님 아내분께서 우리의 어색함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피드백을 하셨다...하핳…
(우리 친해요?)
넷째 날엔 거버넌스와 컨센서스에 대한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눴다. 빠띠팀과 있으면서 재밌었던 건, 이분들의 모든 대화의 끝이 민주주의였던 것. 정말 회사의 방향성과 일치된 분들이구나 싶었다.
(깨알 홍보: 빠띠의 슬로건은 “민주적인 삶과 문화를 만듭니다.”)
대망의 마지막 날. 크로스 페어 프로그래밍을 했다. 나와 달리님, 달리님과 초록머리님, 초록머리님과 켄타님, 마지막으로 켄타님과 나. 이렇게 돌아가면서 두 명이 페어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머지 두 명은 관찰을 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대상을 정했고, 목표는 개발모드와 프로덕트모드 분리하기였다. 나는 package.json에 설정을 주는 것을 생각했는데 달리님이 간단하게 파라미터로 dev를 전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게 더 쉬울 것 같아 동의했다. 1분도 안 걸려 첫 번째 개발모드가 분리됐다. 예전에 살리고살리고 패턴*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렇게 같이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니까 내가 최근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느껴졌다. 돌아가는 것을 빠르게 보니 에너지가 생겨서 다른 부분에도 재밌게 적용을 시작했다.
*살리고살리고 패턴:
애자일 코치인 김창준님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NOO의 원리와 애자일의 원리, TDD의 원리 등을 융합해 만든 것으로, 돌아가는 상태(Working)를 빨리 보는 것이다. 어떤 작업을 시작하면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는 상태(Not working)가 되는데, 거기서 돌아가는 상태(Working)로 빨리 넘기는 것이다. 단순하고 핵심이 되는 것을 만들고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 등을 함축한 패턴이다.
(회고시간 붙여놓은 포스트잇들)
제주 코딩캠프가 내게 남긴 것
코딩캠프 첫날, 달리님이 “짧은 1주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가서 무엇을 해봐야겠다는 단서들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 뭐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여전히 고민은 그대로다. 하지만 그 고민을 함께해볼 동료들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빠띠 분들도 슬로워크 사무실에 올 때마다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 내가 있어서 편하게 올 수 있다고 얘기해주셨다.
개발자가 일을 할 조직을 고를 때 고민하는 것 중에 학습하기 좋은 조직에 들어가는가, 또 조직에 들어가서 학습하기 좋은 문화에 기여하는가, 이 두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솔직히 아직 슬로워크가 학습하기 좋은 조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변화를 지지해주고 ‘학습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조직’이라는 것은 항상 느끼고 있다. 이번 코딩캠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해준 게 그렇듯이. 더불어 나도 슬로워크가 학습하기 좋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데 기여하는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즐거웠던 일주일간의 제주 코딩캠프를 마무리한다.
개발자의 학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슬로워크, 지금 프론트엔드 개발자 채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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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슬로워크 오렌지랩 생산성엔지니어 류성진
편집 | 슬로워크 오렌지랩 마케팅라이터 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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