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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모-두를 위한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

할 말이 많은데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데가 없었어요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다섯 명만 와도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2019년을 마무리하던 12월,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 서울(이하 언서페)의 세션 중 하나로 '모-두를 위한 미디어'를 준비하며 했던 생각입니다.

(모-두를 위한 미디어 행사 홍보용 이미지)

지난해 언서페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도시(포용도시)'였어요. 슬로워크가 포용도시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처음엔 세션 참가를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션을 준비하는 콜라보레이터가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자리가 열렸는데, 많은 분들의 생각을 듣다가 문득 '우리의 이야기는 누가 전해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은 곧장 '세상은 정말 모두의 이야기를 잘 전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이 작은 호기심 덕분에 판을 키울 수 있었던 거죠.

(오렌지레터)

슬로워크의 오렌지레터 역시 모두의 뉴스레터를 표방하며 창간했는데요.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하지만 밖에서 잘 알려주지 않는 소셜섹터의 이야기를 우리 힘으로 더 넓게 전하고 싶었어요. 답답해서 직접 한 거였죠. 오렌지레터가 성장하면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고 여러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섹터 내에서 주로 공유되는 이 소식을 어떻게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가 주된 관심사였고요. 어찌되었든 우리와 같은 분들이 어딘가 또 있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다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세션을 열었어요. 우리는 '미디어'를 기존 언론을 포함해 블로그, 포털 등 이야기를 전달하는 채널 또는 창구로 광범위하게 정의했습니다.

(행사 시작 오분 전!)

쉽게 가시화 되지 않지만 반드시 가시화해야 하는 일을 말하는 사람들을 꼭 만나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에, 예상 신청자 수의 세 배가 넘는 분들이 응답을 해주었어요. 행사장소가 예상 인원에 맞게 이미 정해져 있어 아쉽게 모두 모시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다섯 명을 늘려 총 스물다섯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지역/환경/어린이/LGBTI/미디어/동물권/정치/법률 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노쇼(No show)없는 전원 참석! 

행사의 목적은 처음부터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각자의 일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하고, 서로의 노하우를 나눠보기도 하는 네트워킹 자리에 가까웠습니다. 시간을 최대한 아껴쓰기 위해 신청자분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고민을 수집했어요. 그 중 함께 나눠보면 좋을 것들을 추려 현장에서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어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는데, 크게 5가지로 고민과 노하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씨닷, 손호)

1.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시장에 맞춰 어떻게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유튜브로 넘어오니 문법이 달라지더라. 그래서 처음 3~5초 안에 사로 잡아야 한다, 영상을 세로형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식의 기술을 썼는데, 요즘엔 뭔가 터지기를 바라면서 하기보다 콘텐츠를 꾸준히 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슬로워크가 블로그를 통해 브랜드 저널리즘을 하듯이 관심있는 사람들이 검색 등의 경로로 찾아올 때 그동안 쌓아온 콘텐츠를 보면 되는 것이다. 유튜브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고민을 꾸준히 보여주면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과 접점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갑자기 펭수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소셜섹터에서는 콘텐츠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조직에서 사회문제를 인식하게 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이슈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한다. 거기서 더 나아간 후속 콘텐츠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진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게 미디어의 역할이다. 초기 이슈몰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슈를 제시한 조직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지 연결성을 보여주면 좋겠다."

"미디어를 운영할 때 뭐가 목적인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워낙 플랫폼이 흥하고 망하는 경우가 많고 그 주기도 빨라서 모두 따라가기는 한계가 있다. 미디어를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하지 않는다면, 운영 목적과 타겟을 명확히 설정하고 꾸준히 콘텐츠를 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씨닷, 손호)

2. 죽음, 빈곤, 학대같이 부정적인 이슈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만, 이를 계속 전달하는 게 독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진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 조직과 미디어가 하는 역할을 좀 생각해보면 쓸까 말까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반응이 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 해도 중요한 것 같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계속 같은 이야기만 한다고 느끼기 쉽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독자일 때를 생각해보면, 어느 한 미디어에서 올라오는 모든 콘텐츠를 보기 보다 다양한 매체의 개별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우리가 거짓말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오히려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3. 첨예하게 의견이 나뉘는 예민한 사안을 캠페인 또는 콘텐츠로 다룰 때 우려가 많다. 
"셀링포인트, 아카이빙, 모금 등 콘텐츠 마다 목적이 다를 것이다. 이 콘텐츠의 역할은 B2B 레퍼런스 체크용이다, 모금용이다, 아카이빙용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민이 좀 줄어든다. 매번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는 콘텐츠에 모인 트래픽이 다음에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게 좋을지 구조를 짜놓으면 좋겠다."

"캠페인도 톤 조절이 어렵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를 다룰 때 메시지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좀 더 강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 본질을 해치는 논쟁이 발생할까봐 위축되기 싶다. 모두에게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지점을 찾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모두에게 어려운 일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캠페인 후속 콘텐츠를 통해 실제 만든 변화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이슈는 그런 문제가 덜 하다. 그런데 소셜섹터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이슈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어서 논쟁은 감안하고 갈 수밖에 없다. 콘텐츠가 소비되는 플랫폼마다 독자 성향이 미묘하게 달라서 이걸 분석해 보고 성향에 맞도록 약간씩 가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 씨닷, 손호)

4. 버티컬 미디어(특정 주제를 기반으로 한 전문매체)가 생존하기조차 힘겨운 게 세계적인 현실이다. 다른 미디어는 어떻게 숙제를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급 정보나 매번 발로 뛰어서 특정 분야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미디어로서만 돈을 벌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미디어가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서 브랜디드 콘텐츠로 수익화를 하지만, 그러다 보면 미디어 고유의 색이 흐려져 독자를 잃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미디어 자체를 비즈니스 모델화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5. 기술 기반 미디어(디지털 매체, 타깃 광고, 마케팅 자동화)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자와 못한 자 사이의 격차가 심화된다. 
"타깃광고, 마케팅 자동화 다 좋은 말이고 유용한 기술이지만, 데이터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가설이 더 중요하다. SNS 광고는 변수가 많고 정답이 없다. 그 가설에 맞춰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기만의 정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데이터에만 의존해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실제 우리 조직의 정체성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지되기도 하더라."

(© 씨닷, 손호)

두 시간을 꽉 채워 보낸 시간동안 참여한 분들 모두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을 자주 만났어요. 때로는 소비자나 후원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각자 조직에서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팁을 얻기도 했고요. 행사가 모두 끝나고 명함을 교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자리에 남아 못다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시더라고요. 이런 자리가 정말 부족했다는 걸 또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참가자 분들의 후기가 도착했습니다.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기획에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고요 :)"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명확한 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과 함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같다면 같고 다르다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공통으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이 있어서 너무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함께 나누어주시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생산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참 감사하고 고무적인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고민을 같이 '나눈다'라는 목표에 아주 잘 부합한 행사 진행이 무척 재밌고 인상깊었습니다. 처음 예상으로는 고민을 나눈다고 해서, 그룹별로 모아서 고민을 나누고 발표(?)하는 뻔한 형식일 줄 알았는데 정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5명 이상의 행사에서도 자연스럽게 모두 참여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모임이 단발성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아쉽고 고퀄이었다는 느낌? 이런 자리가 정말 필요했습니다. 또 열어주세요!"

(© 씨닷, 손호)

행사에서 나눴던 이야기들도 무척 유익했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행사를 준비했던 입장에서는 새롭게 동료를 얻은 것 같은 든든함과 앞으로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 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어요. 소셜섹터의 소식을 밖으로 알리고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고요. 많은 분들이 함께 모아주신 에너지를 바탕으로 2020년에도 소셜섹터의 더욱 활발한 연결을 위해 애써 볼 생각입니다. 좋은 모임이 생기면 또 알려드릴게요!


소셜섹터의 활발한 연결은 역시 👉 오렌지레터




글 | 슬로워크 브랜드 라이터 누들
이미지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
사진 | 씨닷, 슬로워크

* 행사 참가자 사진은 사전 동의를 얻고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