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와 같은 서비스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보는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현지인이 사는 집에서 묵으며 현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제나 즐거운 것만 발견하게 될까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단 하루뿐이라도
살아보는 여행을 하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주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좋아 자주 방문합니다. 어느 해엔 옆집도 앞집도 동네 사람들이 사는 제주시의 한 주택에서 ‘살아보는 여행'을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지내서인지 서울에서 생활할 때만큼 쓰레기가 쌓여 호스트 없는 집에 두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날 밤 우리 집 쓰레기 정리하듯 종량제 봉투를 사고 ‘클린하우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 제주의 클린하우스
제주에서는 유료 입장시설이나 관광지가 아니면 쓰레기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관광객도 지역 주민이 사용하는 클린하우스의 주요한 사용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광객은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 걸까요? 숙소 주변이 아니더라도 올레길 등 이동하면서 클린하우스를 마주치면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버려도 되나? 클린하우스는 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 시설과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여행객 입장에서 클린하우스 앞에 서면 지역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이걸 이대로 넣어도 되나?
종량제 봉투에 잘 담아 버려야 할 것만 같은 커다란 함에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일회용 컵이나 비닐 포장지도 그대로 넣어도 되는지 또한 망설여집니다.
그럼 이건 어디로?
클린하우스는 24시간 누구에게나 오픈된 상태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몰래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다가도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들고 있는 쓰레기를 계속 들고 다니면서 문제인식만 늘어난 채 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주의 쓰레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제주를 방문했거나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함께 알았으면 하는 사실들입니다.
1. 전국에서 1인당 쓰레기 발생량이 가장 높습니다.
1인당 쓰레기 발생량은 해당 지역의 총인구 대비 총 쓰레기 배출량을 의미합니다. 총 쓰레기 배출량에는 실거주 인구와 유동인구의 배출량을 비롯한 불법투기량을 포함하고 있어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높은 수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즉 제주가 감당해야 할 쓰레기의 절대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관광객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2. 재활용률은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제주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전국 평균 59%보다 낮은 약 52%이고, 매년 점차 감소(2013년 기준)하고 있습니다. 종이와 플라스틱 중심의 처리 업체가 존재하지만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3.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처리장은 포화상태 입니다.
제주의 한 매립장은 10월이면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리적인 배출량이 많고 분리수거 배출이 안되는 문제로 인해 소각처리장은 고장이 잦고, 이로 인해 사용연한이 단축되고 있습니다.
4. 하수처리시설도 용량을 초과했습니다.
최근 시사매거진2580에서 다룬 제주 하수처리시설 용량 초과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면 정화되지 못한 하수가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언젠가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이외에도 파도에 떠밀려오는 해양 쓰레기가 매년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제주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쓰레기 문제는 조금만 검색해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 문제를 꽤 오랫동안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지만 내가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제주를 방문하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복수의 원인으로 나타난 오늘날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쓰레기 현안을 행정의 역할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행정에서 직접적인 예산 투입과 조례 정비로 해결해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제주를 찾는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적합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요구와 필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쓰레기통이 많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라고 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맥락과 범위를 설정했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기 전에 관광객이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입니다.
정답을 구하는 질문은 적합한 답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앞서 제주에서 자주 여행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클린하우스에서 떠올랐던 몇 가지 생각과 의문점을 공유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핵심은 ‘여행 중 쓰레기가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 직접적인 사용자가 되기 전엔 파악할 수 없는 행동의 동기나 감정이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는 가급적 줄이고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제주 관광객이 되면 누구나 다 아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뉴질랜드 관광청은 수년 전 뉴질랜드 친환경실천 여행 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했는데, 어쩌면 당연하지만 잊기 전에 가까운 곳에서 관광객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 제주에 이런 시도가 있습니다
하나, 제주시에서는 최근 쓰레기 줄이기 실천과제 선정을 위해 제주시민과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100인 모임을 구성했습니다.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는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제주 곳곳에 관광객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어 주민과 여행객이 같은 생활환경 속에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도 반영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둘, (사)제주올레가 운영하는 클린올레 캠페인입니다. 제주올레 각 코스 시작점에서 클린올레 봉투를 받아 쓰레기를 주워 클린하우스에 버리면 기념품을 제공하는 캠페인으로 일반 여행객보다는 환경정화를 목적으로 할 때 참여하기 좋은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부터
제주는 작은 섬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우도는 하루 평균 주민의 4배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매년 쓰레기 발생량이 200% 이상 급증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쓰레기 문제를 그대로 닮은 이 작은 섬에서 먼저, 사람 중심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상상해봅니다.
흔히 문제라고 인식한 것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될 때 피로감을 느끼고 외면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과 함께 사회문제로 다루는 모든 것들이 포함될 수 있죠. 제주의 쓰레기 문제도 지금까지 외면해왔다면 다른 시선과 시도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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