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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lowalk

기술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들

UFOfactory, 생일 축하해요!

 

‘로켓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우주를 유영하는 미확인 비행물체같은 지속가능하고 재미난 조직’이라는 의미로 창립한 UFOfactory. 지금은 슬로워크에서 도킹을 받고 항해지도를 그리면서 항해일지를 기록하고 제로회의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모읍니다. 얼마 전에는 이름을 따서 UFO랩과 Factory팀도 만들었어요. 두 팀은 사업 개발, 업무 효율화 작업, 사업부 프로젝트 지원 업무를 합니다.

 

UFOfactory를 기억하는 케이크 커팅식

5월 15일, UFOfactory의 생일을 맞아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았어요. 권오현 (이하 시스) 슬로워크 대표, 김연주 (이하 쭈) 소셜임팩트 사업부 대표 겸 최고운영책임자, 디자인 리더 호빵, 이선화 기획자가 인터뷰에 참여해주었습니다.

 

참가자 구분은 표기명의 앞글자를 따서 권, 쭈, 호, 이로 표시 할게요. 저는 메이의 메입니다.

 

(인터뷰와 과거 기록들을 참고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네 분 요즘 바쁘실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며칠 전 아이들과 세계여행(부루마블 게임)을 했어요. 저는 파산했네요 하하. 그리고 5월에는 큰 아이 시험이 있어서 같이 공부해줬어요. 일로 바빴지만 매일 밤 30분~1시간씩 내서 해주었답니다.

 

저도 비슷해요. 주말에도 일을 해요. 그래서 빨간 날에는 최대한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특히 요즘에는 조카한테 푹 빠졌어요. 이제 돌 되어가는데 진짜 예뻐요.

 

어디가 그렇게 예뻐요?

 

그냥 하는 행동이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안아주면 제 목을 꼭 끌어안아주고, 토닥토닥 해주면 조카도 저를 이렇게 토닥토닥 해요.

 

아이공 귀엽네요.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

 

회사일도 많지만 몇 달 만에 집안일을 덜하게 돼서 비교적 나아졌어요. 작년 9월 아내가 일을 구했는데 가사와 병행하기 힘들어해서 제가 전담했죠. 힘들었는데 요즘엔 다시 나눠서 괜찮아졌어요. 또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도 할겸 일주일에 한번은 꼭 자전거를 타요.

 

일본에 한달에 2주는 갔었는데 요즘은 일 때문에 한달에 1주일 밖에 못나가요. 그마저도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려고 합니다. 이런 생활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이렇게라도 일해서 회사를 안정시킨다는 목표를 빨리 달성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영원한 은퇴를….

 

시스님의 ‘영원한 은퇴’는 UFOfactory 때도 들었던 것 같아요.

 

아 그랬나요.

 

UFO에 탑승하게 된 이야기

 

그래서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군요.ㅎㅎ 히스토리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UFOfactory가 어떤 회사였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실마리를 찾아 과거 기록을 살펴보니 시스님이 ‘혁신가를 위한 IT솔루션, 혁신적인 웹서비스’로 소개하셨더라고요.

 

UFOfactory 인트라넷 캡처

네. 그건 UFOfactory가 2년 정도 되었을 때 정리한 문구예요. 소셜벤처와 비영리단체에 웹사이트 개발 및 디자인, 캠페인 기획 및 운영, 서비스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만나는 고객들이 대체로 혁신가를 꿈꾸는 이들이었거든요.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자, 나아가 저희의 자체 서비스도 만들어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지금 슬로워크가 그런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UFOfactory를 한창 운영하실 때 그런 콘셉트를 떠올리셨군요. UFOfactory의 시작은 어땠나요?

 

2013년 5월 15일 회사를 열었어요. 2010년 다음에서 퇴사할때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재단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약간 꼬이면서 잠깐 제일기획에서 일을 했어요. 퇴근 후엔 ‘집밥’이라는 소셜 다이닝 스타트업 기술 자문을 했는데 자문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플랫폼을 개발해 주어야 그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초기 플랫폼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때 자각했죠. ‘시간이 나면 이 일을 하는 걸 보니 나는 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일에 한번은 제대로 부딪혀 봐야겠구나. 소셜섹터에서도 기술을 잘 활용해야만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대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뤄 지속가능한 곳은 여전히 없는데 나라도 소셜섹터에 필요한 기술을 공급하는 조직을 만들어 봐야겠다’고요. 그래서 UFOfactory를 창립했습니다. 집밥 프로젝트도 쭉 이어서 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합류하셨는지 각각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4년 10월 입사했어요. 합류 직전에는 부띠크를 운영했는데 저의 성향과 맞지 않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쯤, 예전에 같이 고생하며 일했던 분으로부터 시스님을 소개받았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호감을 느꼈고요. 저의 기본적인 철학과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조직 문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으셨다니, 과거에 어떤 경험을 하셨고 거기에 비춰서 UFOfactory가 어땠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띠끄를 운영하기 전, 영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에이전시들에서 일했어요.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맡으면서 제 기본적인 생각과 다른 일을 하니까 회의가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어 햄버거 사이트를 디자인 하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다’는 차별적인 문구를 봤을 때, ‘미래의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드는 회사’라는 카피를 내세우는 담배 회사와 사이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했을 때요. 다시는 에이전시에서 일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UFOfactory는 소셜 임팩트를 내는 프로젝트들을 맡는다고 들어서 일하다보니 제가 가진 재능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좋았어요.

 

뭔가 타이밍이 잘 맞았네요. 선화님은 언제 입사하셨나요?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요. 아는 선배가 시스님을 소개해줬어요. 시스님이 “하고 싶은 것이 비슷하니 뭐라도 같이 해보시죠”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디자이너로 프로젝트를 하다가 제 전공을 살려서 기획자로 전향했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퍼블리싱도 하고 개발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루비온레일즈도 공부하게 됐어요.

 

선화님은 UFOfactory가 사업자 등록도 하기 전, 2013년 초부터 같이 일했어요. 그때 사무실도 없었죠. 강정수 박사와 이성규 메디아티 블로그랩장이 쓰던 사무실에 얹혀 살았어요.

 

맞아요. 시스님이 온라인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려는데 맥이라서 안되는 거예요. 윈도우를 한 세 번은 깐 것 같아요. 처음에는 버전이 안맞았고 다음에는 가상머신으로는 안된다고 해서 다시 깔고 그랬어요. 고생 많이 하셨죠. 저는 그동안 옆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사업자 등록부터 힘든 한국에서 사업하기…. 현장감 넘칩니다. 쭈님도 창립 즈음 입사하셨나요?

 

아니요, 2014년 초에 입사했어요. 처음은 대학 등에서 교육을 하다가 적성이 아닌것 같아 실무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큰 아이를 출산 후 실무를 시작했는데 늦은 밤 혹은 새벽까지 야근하는 것이 아이를 둔 엄마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었어요. 일이 많아 당연히 해야하는 야근보다 상사가 집에 가지 않았으니 퇴근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도 있었구요. 게다가 그 일이란 게 저에게는 가치가 없는데, 돈만 벌기 위해서 지속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회사는 그만 뒀지만 배운것이 개발이라 프리랜서로 IT업무를 했어요. IT업무로 내가 가진 가치를 발현할 수 없다면 나중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에게 사회적인 가치를 조기교육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UFOfactory 포트폴리오 페이지

멋지세요. 그러면 어떤 계기로 UFOfactory에 몸 담게 되셨나요?

 

전 직장 팀장님이 ‘제게 딱 맞는 회사가 있다’며 UFOfactory의 URL을 건네주셨어요. 레퍼런스만 보자고 들어갔는데 사회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조직의 일만 해온 거예요. 신기했죠. 게다가 원격이나 자율근무를 할 수 있다고 들었을 때는 더더욱 일할만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UFOfactory 미디엄 글 ‘UFOfactory라서 가능했던 해외리모트' 캡처

다들, 꼭 있어주셨어야 할 시기에 와 주셨어요. 창립 초기, 기획자를 찾았을 때 ‘분명히 오래 함께 하실 분’이라며 선화님을 추천받았고요. 1년쯤 지나 한창 힘든 시기에 연주님이 와서 회사를 살려주셨죠. 그리고 회사에 시니어 디자이너가 반드시 계셨어야 했을 때 마침 호빵님을 소개받았어요. 천운이었죠. 혼자서는 못했을 일들을 이분들과 UFOfactory를 지나간 많은 분들 덕에 해냈습니다.

 

“‘우리는 내일이라도 망할 수 있다’며 일했어요”  

 

정말 그렇겠어요. 역량 있는 분들이 적재적소에서 열일을 하셨으니 5년 동안 그 많은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으셨겠죠.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포트폴리오만 92개더라고요. 실제로는 21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죠.

 

다양한 유형의 사이트(원페이지, 블로그&미디어, 커뮤니티, 쇼핑몰 등)를 만들었고요. 기능도 학사관리시스템부터 문화콘텐츠 등록 시스템, 사용자 연결 시스템, 인트라넷, 지원사업 신청 시스템, 대관 및 예약 시스템, 투표 시스템, 후원관리솔루션 연동까지 구축해보았어요. 작업하면서 클라이언트의 아이덴티티를 웹에서 ‘어떻게’, ‘잘’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들의 사회적 목표를 숙고하면서 일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UFOfactory 로고

그렇게 나온 프로젝트들이 집밥부터 청년허브,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 민달팽이유니온, 오르그닷, 동그라미재단, 스쿨미,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세이브더칠드런, 잇다, 월드비전, 성동 이음 성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 ‘이음', 광명사회적경제지원센터, 그린피스, 스페이스클라우드, 어반비즈, 국경없는의사회, 카우앤독 등이죠. 정말 많은 곳과 협업하셨어요. 휴! 선화님,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하, 작업할 때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갔고 힘든 순간도, 좋은 날도 있었는데 또 다 지나가네요. 그래서 말씀드리기 막막하지만 떠올려보자면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의 소아중증 질환 치료비 지원사업 ‘치얼업(Cheer Up)’이 기억에 남아요. 삼성전자 임직원의 기부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는 사업이었어요. 다른 분의 작업을 인수인계 받아서 진행했는데 관리자 페이지 기획이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1년을 보고 만들었는데 잘돼서 4~5년째 하고 있네요. 여기서 협업하던 팀장님과 인연이 이어져서 보건복지부 공공보건프로그램 사업 ‘301 네트워크 사업’의 사이트도 개발했어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 특히 노인들과 가까운 병원을 연계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사이트여서 보람찼어요.

 

치얼업 프로젝트 캡처

기술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예시네요. 호빵님도 생각나는 프로젝트가 있으실 것 같아요.

 

그린피스와 함께 했던 ‘나쁜원전이야기’ 캠페인이 생각나요. 대한민국 원전 사건ㆍ사고 정보공개 사이트를 만들고 원전의 위험성을 해골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이었거든요. 당시 그린피스에서 위험성을 해골, 방독면 등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저희는 너무 ‘세다’고 걱정했어요. 결과물은 절충안으로 나왔죠. 이렇게 일 자체도 강렬했지만, 저희가 가장 처음 합을 맞췄던 프로젝트여서 기억에 남아요. 연주님이 PM, 선화님이 작업자였거든요. 다들 고생이 많았던 캠페인이었어요.

 

그린피스 나쁜원전이야기 캠페인 페이지 캡처

그렇군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단순 홈페이지 개발 작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네. 서비스 만들 때 초기 기획부터 개발까지 같이 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월드비전 위기아동지원사업이 기억나네요. 당장의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월드비전이 긴급하게 도와주는데, 신청을 우편으로 받더라고요. 해당 프로세스가 즉각적으로 작동하도록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기는 작업을 저희가 함께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동그라미재단 로컬챌린지 프로젝트가 생각나요. 동그라미재단이 지역에 있는 사회적기업, 소셜벤처에 지원금을 주고 브랜딩, 홈페이지 개발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재단에서 먼저 저희와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주셨어요. 개발을 모듈로 해서 블로그, 쇼핑몰, 원페이지 형태로 한꺼번에 12개 사이트를 만들었는데요. 어려웠어요.

 

어떤 면에서 어려웠나요? 취지는 좋아보여요.

 

취지는 좋았지만 지원이 정말 필요했던 조직과는 작업의 양이 많아도 같이 고민했고 즐겁게 개발했는데, 실제 지원이 필요하지 않으셨던 분들이 지원을 받게 된 경우는 많은 논의가 되지 않아 작업의 양은 적었지만 결과물을 만드는것이 어려웠어요. 그때 다시 확인했죠. 업무의 절대적인 양이 많아도, 클라이언트와 사회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UFOfactory에 모였다고요. 이후 동그라미재단 측에서 감사하게도 2차 프로그램까지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아쉽게 거절했어요.

 

주로 가치를 중시하고, 사회를 혁신하려는 분들과 작업을 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렇죠. 텀블벅 검색엔진 개발, 열정대학, 잇다 플랫폼 개발 등 벤처와도 협업을 많이 하셨죠?

 

UFOfactory가 개발 및 운영했던 잇다 2.0 플랫폼 캡처

네. 공유경제 플랫폼 개념이 국내 소셜섹터, 비영리단체 영역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희가 아카이브, 미디어형 사이트, 반응형 사이트 등의 기능을 갖춘 웹 또는 앱 서비스 개발 작업을 많이 했어요. 당시만 해도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기획부터 함께 만든다는 건 국내에 생소했죠. 해외에는 스타트업 초기에 디자인이나 개발 전문회사가 함께 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국에선, 특히 소셜 벤처 영역에서는 없던 사업이었습니다. 투자 생태계도 없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우리에겐 서비스 기획, 디자인, 개발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보니 가능했던 일이죠. 물론 협업하자고 연락이 오면 아주 초보적인 아이디어 단계인 경우가 많아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여러 모로 고민하다가 다섯 팀 중 한 팀만 함께 했지만요. UFOfactory가 1세대 소셜벤처들의 초기 디지털 인프라를 함께 만들었다고 보셔도 좋겠어요.

 

당시 UFOfactory 구성원들은 ‘우리는 내일이라도 망할 수 있어요’라는 생각을 공유했어요.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었고요. 소셜벤처든 소셜섹터든 생태계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기잖아요. 회사 및 단체들은 정부 지원금에 기대는 비중이 매우 컸고요. UFOfactory가 그들을 돕는 일이 난이도가 높고 위험하고 불확실성이 높다고 봤어요. 그래서 각자 일을 열심히 하지만 회사가 망하게 되었을때 구성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됐으면 했어요, 그때는요.

 

구성원들에게 미래 가치를 약속하는게 아니라, 현재를 만든 사람들이 현재 가치를 다 같이 누리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구성원 퇴직금을 꼬박꼬박 적립했고 수익이 발생하면 인센티브 형태로 나눴어요. 빚은 만들지 않고 어려운 일을 무리해서 하지 말자고 생각한 거죠. 언제든지 우리가 원할 때 그만 할 수 있도록요. 근데 저희는 20명이서 지원금 없이도 창업 첫 해부터 슬로워크와의 합병 전까지 흑자를 냈어요.

 

대단하네요. 저는 그때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때쯤 스멀스멀 궁금해지는 부분이 생기네요. 예상하시겠지만 합병했을 때 이야기요.

 

“기술과 디자인으로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2016년 슬로워크와 UFOfactory 사이에서 합병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하셔라, 내 할일 유지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어요. 다만 슬로워크와 몇차례 프로젝트를 같이 해서 익숙하긴 했어요. 종종 받는 프로젝트 중 슬로워크에서 로고 디자인 작업이나 웹디자인 작업이 되어서 넘어오는 것들도 있었고요.

 

맞아요. UFOfactory는 플랫폼 서비스 제공사로, 슬로워크는 디자인 회사로 유명했어요. 업계에서 둘이 업무, 견적 측면에서 비교가 많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슬로워크가 유명한지 잘 몰랐어요. 합병을 하든, 하지 않든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병 이유가 궁금했어요. UFOfactory 입장에서는 위기 상황이 아니었고 꾸준히 매출도 낼 수 있었을 텐데 합병을 왜 해야할까. 슬로워크와 UFOfactory가 합병을 통해 서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죠. 시스님에게 물어보니 여러 시각으로 설명을 해주셨어요. 예를 들어 기술과 디자인 측면에서 통합적인 솔루션을 높은 퀄리티로 내놓을 수 있는 규모있는 회사가 된다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우려 반, 기대 반이었어요.

 

합병하고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UFOfactory의 경우 지금보다 플랫폼 서비스 전체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안내자, 길라잡이의 느낌이 강했죠. 합병 이후 클라이언트가 다양해지고 의뢰 비용도 높아졌는데, 서비스 전체를 기획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지면 좋겠어요. 시스님은 별로 안 좋아하시겠죠. 하하

 

많이 달라졌어요. 일에 착수할 때 “한번 해볼까요”가 아니라 “하기 위한” 규칙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간단했는데 지금은 일에 단계가 생겼죠. 구성원의 수가 늘어서일 수도 있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회사로서 예전보다는 체계화됐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팀들 사이에서 미션도 공유해야 하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UFOfactory에서는 구성원들과 개발, PM 같이 했는데 지금은 회사 운영만 고민하고 있네요.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수치로만 봐도 예전에는UFOfactory 구성원 20명 정도 하고 일했는데 지금은 빠띠, 스티비, 슬로워크 인원을 다 해서 한번에 100명이 넘는 인원과 일하고 있어요.

 

전사 대상 타운홀에서 슬로워크가 나아갈 방향을 발표하는 시스

저는 UFOfactory 때도 이사였고, 지금 슬로워크에서도 이사인데 달라진 게 참 많아요. UFOfactory 때도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는 회의를 ‘제로 회의’로 불렀거든요. 그때는 이 회의에서 고려해야할 규칙이 간단했는데 슬로워크에서는 경우의 수를 더 많이 고려하게 돼요. 많은 분들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탄탄한 회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여러 각도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UFOfactory는 자리를 잡아갔지만, 저는 소셜섹터에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고객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치면서, 구성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규모를 갖춘 우리 같은 디자인과 개발 전문 조직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마침 슬로워크의 임의균 창업자가 합병을 제안하더라구요. 합병하면 안정적인 규모를 갖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쭈님처럼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으셨나요?

 

문화가 다르다는 부분은 걱정됐어요. UFOfactory 구성원들은 자율적이고 개인적으로 일하는데 이 문화를 다른 회사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합병 조건으로 이름은 슬로워크로 하되 UFOfactory의 문화를 우리 구성원들은 2~3년 정도 유지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UFOfactory는 팀별 자율제도를 실행했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으며 리모트 워크를 장려했죠. 비용도 보고하지 않았어요. 그것만 지켜달라고 이야기 했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합병 이후 슬로워크의 모습을 어떻게 보세요?

 

서로 다른 두 조직의 문화가 섞이는 과정은 확실히 힘들었지만 기대했던 대로 회사의 규모는 커졌고 소셜섹터에서의 영향력도 커졌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확장 중이고요. 어려운 이야기지만, '구성원들이 건강한 존재로 남아 여러 사람을 만나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슬로워크의 지향이자 정체성입니다.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의 답변을 꼭 듣고 싶었어요.

 

저는 어쨌든 세상이 지속적으로 발전돼 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 길을 좀더 빠르게 찾는 지도를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는 있어요. 저희 클라이언트가 잘되면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적인 가치가 더 많이 알려지고, 그러면 그 분들의 의지가 사회 곳곳에 더 많이 닿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이게 제가 일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네, 저는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슬로워크에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소셜섹터 종사자들을 만나다보면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나름 관심도 있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현장에서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우리가 가진 기술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우리와 함께 일하는 단체들의 정보를 널리 알릴 수 있다면 그것이 디지털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양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슬로워크의 오렌지레터처럼요.

 

 네 당연하죠.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면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어떻게’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래서 사회 변화의 기반이 되는 공공의 기술을 만드는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이죠. 슬로워크가 바로 ‘어떻게'와 이를 만드는 전문가들의 기반을 고민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돼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새로 생긴 데이터 사업부는 미디어 섹터에도 오픈 소스가 중요하고 신뢰 기술이 중요하다고 알리고 있죠. 세상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작업하고,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게 만드는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자 슬로워크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UFOfactory.org - Develop Social Impact: UFOfactory의 역량과 노하우, 구성원들이 했던 고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블로그 글들입니다.

 

UFOfactory PortfolioUFOfactory의 역량과 노하우, 철학이 담긴 포트폴리오입니다

 

p.s. 굳이 안읽어도 되는 메이 갬성

 

이번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저도 말을 보태고 싶었어요. 처음에 UFOfactory 창립일 기념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기대도 했지만, 그보다 우려가 더 컸습니다. UFOfactory 구성원들이 대단한 일을 했는데 제가 역사를 잘 몰라서 성과를 잘 드러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하지만 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내용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객관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다 일을 하면서 개개인이 가졌던 생각, 이것을 동료들과 공유하려는 마음, 회사가 공유하는 가치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잘 모르는 제가, 가장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볼 수 있을테니까요. 지나온 시간을 무 자르듯 쪼갤 수도 없을 뿐더러 노하우와 네트워크, 철학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거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무수히 쌓아갈 슬로워크의 모습을 또한번 기대해봅니다.

 

 

 

정리 |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이미지 및 일러스트레이션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