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된 가리왕산 원시림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SNS를 통해 그 소식을 적잖게 접하긴 했을 겁니다. 사실 올림픽 개최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개발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랫동안 보존돼 왔던 자연유산을 보름밖에 안 열릴 올림픽을 위해 훼손한다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가리왕산에선 활강경기장 건설이 시작된 상태. 저희 슬로워커는 환경운동 시민단체 '녹색연합'과 함께 가리왕산의 상태를 보러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사진출처: 우이령사람들
가리왕산의 가치
가리왕산은 세종 때부터 왕실에 바치는 산삼 채취를 위해 봉산(출입을 금지한 산)하여 나라가 관리하면서 500년 이상 훼손되지 않은 우리나라 유일의 원시림입니다. '목신(木神)들의 숲'으로 불릴 정도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당산나무급으로 그 둘레가 1.4m 이상이고요. 우리가 얼마나 지켜야만 하는 산인지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자연을 보호해야 할 산림청이 오히려 스키장 개발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산림을 개발하라고 산림청이 있나 봅니다. 답답하죠. 대체 왜 가리왕산에 스키장을 지으려하는 걸까요?
사진출처: 우이령사람들
활강경기장 규격에 맞는 유일한 산은 가리왕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활강경기장 규격을 충족시키는 곳이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것. 단 경기를 치른 후 사후복원을 전제로 한 결정이라고 해요. 그러나 얼마전 가리왕산이 유일한 대안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환경단체들이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집에 '2Run' 조항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죠. '2Run' 규정은 '동계올림픽 개최국의 여건상 표고차 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때 350∼450m 표고차 슬로프에서 두 번에 걸쳐 경기를 하고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는 내용입니다. 이 규정을 따른다면 강원도 내 기존 스키장들에서도 활강 경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요.
사진출처: 우이령사람들
500년 원시림 vs 3일 열릴 경기를 위한 스키장 건설
약 보름간 열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활강 스키경기는 단 3일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 3일을 위해 500년된 숲을 밀어낸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부터 던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2년 소치올림픽도 사상 최고의 비용과 날림공사 및 보호구역의 활엽수림을 포함한 환경 파괴를 지적당했습니다. 친환경 국제 대회가 당연시되고 있는 요즘, 소치 때와 다름없이 환경 파괴 올림픽을 개최한다면 국제적 망신은 피할 수 없을 거라 짐작됩니다.
사진출처: 우이령사람들
예산낭비 및 복원 계획없는 강원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알펜시아 리조트를 무려 1조 6,836억 원을 들여 건설하였으나 적자 운영으로 빚만 1조 원에, 매일 1억 원의 이자가 발생하여 강원도 재정 악화에 불을 당기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 비용은 당초 예상했던 800억에서 거의 두 배 늘어나 1,636억 원으로 확인되었다고 해요. 이뿐만 아니라 사후복원을 전제로 건설에 들어갔지만 구체적인 복원 계획도, 예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연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며 올림픽 이후 리조트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고요.
녹색연합과 슬로워커의 가리왕산 답사
녹색연합은 지난 5월 가리왕산을 지키는데 힘을 더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집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7월 12일엔 2차 모집으로 답사 일정을 꾸렸는데요, 그때 슬로워커도 동참해 다녀온 것입니다.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입구부터 시작해 중봉 - 하봉 - 활강경기장 벌목지대까지 왕복 8시간에 걸쳐 다녀왔는데요, 왜 원시림이라 하는지 알만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던 산행이었어서 다녀온 슬로워커 모두 일주일동안 심한 근육통에 시달렸습니다^^;
가리왕산 곳곳에 분포된 오랜시간 풍화·침식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 온도조절 돌더미(?) '풍혈지역' 설명도 듣고,
여러 나무들 설명을 들으며 중봉을 지나 하봉 근방에 다다르니 활강경기장 터로 광범위한 벌목지대가 나왔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도중 하차하시는 분들과 낙오자가 생길 정도로 험난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산이라 빛도 잘 안 들고 빽빽한 숲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환한 공터가 나타났죠. 빼곡한 나무들 너머로 무언가 허전한 터가 보이시나요? 활강경기장 공사를 위해 베어진 수많은 나무들이 쌓여있는 벌목지대입니다.
저 하얀 줄은 활강경기장 코스를 구분짓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이 줄을 기준으로 숲이 사라져있었죠.
저희 슬로워크의 그린 캠페인인 'Vote for Green' 인증샷도 찍고 돌아왔습니다. 잘려나가 쌓여있는 수많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나는 그린에 투표합니다'라는 문구의 엽서를 들고 있자니 슬프고 속상한 기분이 들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괜히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산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정도로 가리왕산은 정말 야생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엔 둘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산임을 모두 깨달았죠. 지키지 말아야할, 훼손되게 놔두어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슬로워크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얼마전 강원도는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중 여자 코스를 없애고 남여 통합 코스로 진행하겠다고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다행히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사이 원시림 일대는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녹색연합은 환경단체들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예산 문제로 변경된 걸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돈 문제가 제일 중요한 거겠죠.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일본은 실제로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때 국제스키연맹의 활강경기장 출발점을 더 높이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국립공원 구역을 지켜냈다고 합니다. 국제스키연맹의 규정을 떠나서 우리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친환경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칭찬받는 건강한 동계올림픽이 최초로 평창에서 열리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 여러분도 가리왕산을 지킬 수 있습니다!
1. 가리왕산 직접 방문하기
2. 홈페이지 방문하여 목소리 내기
3. 지속적으로 소식 확인하기
by 고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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