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슬로워크가 진행한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슬로워크 10년, 용하게 살아남았습니다.”에서 지난 10년간 슬로워크가 겪어온 일을 되돌아보며 슬로워크 내부의 이야기를 소개했다면, 오늘은 슬로워크 외부의 이야기, 슬로워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을 분석한 과정과 결과를 소개합니다.
①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② Until Now: 슬로워크 10년, 용하게 살아남았습니다.
③ Right Now 1: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냐?
④ Right Now 2: 슬로워크 진단 결과는 '보통 회사'
⑤ Right Now 3: 그 회사가 알고 싶다.
⑥ Right Now 4: 지금이 던킨도넛 먹을 때인가요?
⑦ From Now on 1: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 이렇습니다.
⑧ From Now on 2: 슬로워크 아이덴티티를 공개합니다.
역할 나누기
슬로워크라면 번뜩이는 영감과 직관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할 것 같지만,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기에는 영감과 직관만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만큼 균형 잡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에 대한 외부 환경 분석은 수도 없이 해봤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외부 환경 분석을 본격적으로 해보는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거시 환경을 분석할 사람, 산업 동향을 분석할 사람, 그리고 이 분석을 돕기 위한 리서치 소스를 정리하여 공유할 사람으로 역할을 나눴습니다.
모든 위대한 리서치가 시작되는 곳
아래의 단계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STEEP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거시 환경을 분석했습니다.
슬로워크가 속한 디자인 산업(특히 디자인 에이전시 업계)의 동향을 분석했습니다.
거시 환경 분석과 산업 동향 분석 내용을 종합하여 위협 요인과 기회 요인으로 분류했습니다.
고객, 협력사 블로그 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슬로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 STEEP 분석은 기업이 속한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요인(Social), 기술적 요인(Technology), Economic(경제적 요인), Ecology(생태적 요인), Political(정치적 요인) 등의 거시적 요인을 파악하는 분석 방법입니다.
크고 작은 현상부터 슬로워크와 언뜻 상관 없어보이는 트렌드까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부터, 느끼고는 있지만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던 것까지. 어렴풋이 알던 게 있다면 보다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보고 사실을 확인하고 원인과 배경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냐?"
외부 환경 분석을 하던 슬로워커들 사이에서 나온 말입니다. 변화를 뒤쳐진다는 말은 진부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분석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슬로워크를 둘러싼 환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위협 요인 1.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소비 패러다임의 변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 자체보다는 결과물을 만드는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디자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개된 프레임워크,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면 웹페이지를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Squarespace, Weebly, Wix처럼 서비스로 제공되기도 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면 기술적, 디자인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웹페이지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들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디자인 니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웹 에이전시에 의존하던 일들이죠. 슬로워크의 고객들 중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영리회사나 비영리단체도 많습니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고 슬로워크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규모가 크지 않은 영리회사나 비영리단체 대상의 새로운 시장 기회를 만들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위협 요인 2. 진격의 인하우스 디자인팀
기업에서 인하우스 팀에 일을 주는 이유는, 브랜드 이해도(93%), 제품에 대한 과거 지식(80%), 비용절감(79%), 공통된 목표(78%), 스피드(71%), 고퀄리티 디자인(68%) 등 입니다.
인하우스 디자인팀이 커지고 디자인 측면 뿐 아니라 전략/커뮤니케이션 부분까지 그 영향력이 확장되면 디자인 에이전시가 가지고 올 수 있는 프로젝트의 비중이 줄어들 것입니다. 또는 갑과 을의 종속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실력있는 디자이너를 구하는 게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기회 요인 1. 디자인 개념의 변화와 확대: 디자인 융·복합의 시대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디자인의 융·복합이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수요시장과 구분되는 새로운 수요시장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통적 디자인 산업은 민간 분야 제조/서비스 산업 혁신에 기여하여 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유발하는 산업이고 새롭게 확장되는 디자인 산업은 민간 및 공공분야의 문제점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을 이루는 산업입니다.
이런 디자인 개념의 변화와 확대에 따라 디자인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디자인 작업의 수요는 낮아질 것입니다. 반대로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작업에서 디자인의 비중과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사업 측면에서는 경쟁해야하는 대상과 영역이 넓어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입니다.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양하면서도 통합적인 지식과 컨설팅 능력을 요구하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하고, 디자인 개념의 확장 방향을 적극 수용하고 결과물 중심의 디자인 서비스에서 통합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컨설팅 역량을 개발해야 합니다.
기회 요인 2.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확정과 실행
지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개발 목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가 UN에서 공식 승인되었습니다.
슬로워크는 기존에도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기후,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슬로워크의 고객군에 속한 공공기관, 국제개발 비영리단체들에게 SDGs가 중요하고 중점적으로 지향하는 사업 방향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 SDGs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관심을 가지고, SDGs와 관련된 다양한 실행 및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미리 고민해본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위협 요인과 기회 요인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요인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실질적인 위협이나 기회로 체감하고 있지 못하던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면 변화에 둔감해지기 마련입니다. 모니터 앞에서 느끼는 것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슬로워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외부 환경 분석과 함께 진행한 온라인 설문을 통해 고객, 협력사, 블로그 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슬로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여러분은 슬로워크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여러분이 어떤 단어를 떠올리셨다면, 아마 이 단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외부에서 바라보는 슬로워크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 있는 듯 합니다. 내부 구성원들의 생각도 비슷하구요. 사실 궁금했던 건 다른 것이었죠.
많은 분들이 슬로워크에 대해 아낌없이 쓴소리를 해주셨습니다.
평소에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만큼 더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이 쓴 소리입니다. 그렇기에 칭찬과 격려의 말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다행히 쓴 소리보다 칭찬과 격려의 말이 더 많았습니다.)
번외편: 디자인 업계 전문지 3년 치 몰아보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국내 대표 디자인 전문지인 월간 디자인과 CA의 3년 치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양이 방대하긴 했지만 국내/외 디자인 업계의 최근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기에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습니다. (슬로워크는 월간 디자인과 CA의 장기+열혈+정기 구독자입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쌓여있는 월간 디자인과 CA
그 중 몇 가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저는 디자인을 다양성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디자인의 개념적 정의는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의미는 절대 현재 상태에 멈춰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동사입니다." - 데안 수직
- "장인들과 교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물건 만들기에만 가치를 두며 외길인생을 살아온 대부분 자신의 물건에 대해 설명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다른사람들 앞에서 자기 물건을 설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인들이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마츠초에 미츠코
- "나는 일을 하면 하면 할수록 디자이너가 산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재료에 예쁘게 모양을 더하는 일은 점점 줄고 서로가 지닌 가치와 재능을 연결해 조화롭게 만드는것이 디자인이다. 즉 연합하고 계획하는것 말이다. 요즘 내가 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서로 협력해야만 이뤄낼수 있는 것이다." -마탈리 크라세
- "이제 뉴튼의 시대가 아니라 다윈의 시대다" -팀브라운 ideo 대표
"2013년을 빛낸 디자이너들의 한마디", 월간 디자인, 2013년 12월호
"사람을 매혹시키는 결과물을 만드는 방법을 천착해온 디자이너는 이제 단순히 취직이 잘되고 이직이 원할하며 높은 연봉을 받는 현실적인 영역에만 자신을 가두어선 안 된다. 만약 콘텐츠의 명확한 방향을 정하는 기획력과 실제로 만드는 구현력, 그리고 유통과 피드백 사이에서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겸비한 디자이너가 출현한다면 동시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풀루엔서로 진화하는 역사적인 기회가 펼쳐질것이다."
"디자이너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CA, 2014년 11월호
* 월간 디자인, CA 분석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그래서 뭐?
외부 환경 분석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분석 결과를 근거로 우리를 어떻게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외부 환경 분석을 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인사이트를 접하기도 하고, 여러 트렌드를 관통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하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며 앞으로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 아직 질문조차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한 단계입니다. 여정은 계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덴티티 공개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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