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인 인물을 앞세워 열린 정부를 추구하는 영국과 대만
[해외 정부기술 개선 사례 1] 백악관의 디지털 기술 엘리트 조직은 어떻게 운영될까? |
정부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아, 이런 것 개선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아요. 공인인증서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개인정보 보호 오류로 인해 로그인을 한번에 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분명히 같은 사이트에서 어떤 문서는 한글 파일인데 또 어떤 문서는 PDF 파일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모바일로 넘어오면 더 아쉬워져요. 행정 처리할 때마다 부처마다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써야 하고, 그마다 보안모듈을 깔아야 하니 접속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기도 하죠. 휴!
물론 한 국가의 시스템을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응해야할 기기도, 운영체제도 한 두개가 아닌데 규모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만 해도 5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사용할 시스템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하죠. 또 시스템 구성과 응집력을 고려하면 기관 및 조직 사이의 경계없는 협력이 필요한데,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집단들이 그러기는 역시 어려워요. 마지막으로 높은 수준의 보안은 필수입니다. 국가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일반 서비스라면 사용자가 최우선이겠지만 정부 서비스는 이렇게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개별 사용자가 문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정부의 디지털 기술(이하 정부기술)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정부기관, 기관과 기관이 상호작용하는 방식, 사회에서의 정보 유통 방식을 정의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분명히 있다고 봐요. 슬로워크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부기술 수준을 한단계 높이려는 해외정부의 시도를 세 개의 시리즈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미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USDS를 다뤘어요.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영국과 대만의 정부를 살펴봅니다. 두 나라는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며 정부 데이터를 누구나 보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개, 개방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데이터에서 출발하니까요.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만드는 정보고 우리나라의 정보인데,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정치적인 판단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원활하게 공개되지 않을 수 있고요. 오픈 데이터, 오픈 정부를 옹호하는 조직 및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슈를 제기하지 않으면 유야무야 되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데이터를 개방하는 데 관심이 있는(혹은 있어야할) 정부가 힘있게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세부적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역시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죠. 영국과 대만이 그랬어요. 영국 정부는 웹 창시자 팀 버너스 리를 내세웠고, 대만은 천재 해커이자 무정부주의자이자 미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인물 오드리 탕을 ‘디지털 총괄 정무위원’ 자리에 앉혔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게요.
“정부 데이터를 다른 데이터와 매쉬업할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요”
영국의 경우 언론사 가디언의 테크 섹션이 불을 붙였습니다. 2006년 가디언은 “정부 데이터를 국민에게 돌려달라”는 슬로건을 들고, 정부 기관들이 취득한 정보를 무료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민간에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캠페인을 주도했어요. 당시 정책에 따라 일부 정부 기관들은 지리, 날씨, 공공 교통, 수로 및 해안, 항법 데이터 등 공공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더러 지역 정부에 팔고 있었거든요. 근데 보시다시피 나라의 주요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됐고, 서비스로 만들었을 때 가치있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데이터였죠.
캠페인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웹 기반 지식 산업을 나라에서 육성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고요. 2009년 노동당 출신의 영국 수상 고든 브라운이 정부 각 부서에 데이터를 무료로 재사용(상업적 이용 포함) 할 수 있게 만들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어요.
그리고 팀 버너스 리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했죠. 들끓는 여론을 잠재웠고, 이렇게나 대단한 인물을 앞세우면서 “몇 달 안에 오픈 데이터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하며 리더십을 구축했습니다. 팀 버너스 리도 정부의 투명성 보장, 정부의 데이터 공개 의무 이행 촉구, 정부 부패 척결을 주장하며 정부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면서 정말 6개월 안에 오픈소스 개발자들과 협업해 영국 정부 데이터 공개 사이트를 열었어요. 리눅스, 드루팔, 미디어위키 등 오픈소스를 적용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여기서 중앙 정부, 로컬 정부, 공공단체가 발행한 데이터, 데이터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링크, 데이터를 발행할 수 있는 계정 생성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데이터를 재사용할 땐 왕실 저작권, 왕실 데이터베이스 저작권 라이선스가 적용돼요. 여러 조건이 있는데 일단 ‘데이터 제공자 이름’을 명시해야 하고 출처를 허위로 밝히면 안돼요. 정부 서비스를 만들려면 이 사이트에도 안내되어 있는 절차를 밟아 ‘레지스터’에 올라온 정제된, 신뢰 가능한 데이터를 사용해야 합니다.
팀 버너스 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빠른 시간 안에 원스톱 사이트를 연 것도 대단한 일인데 말이죠. 그는 정부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 자체보다 ‘어떻게’ 공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만든 ‘5 Stars Open Data’ 원칙을 정부의 데이터 공개에도 적용하고자 했어요.
5개의 별은 각각 단계를 뜻해요. 별 하나는 정부의 데이터를 온라인에 올리는 것, 두 개는 포맷을 구조화해서 통일하는 것, 세 개는 csv 파일 형식과 같은 공개 표준 포맷으로 통일하는 것, 네 개는 데이터를 연결(링크!)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는 것, 마지막 다섯 개는 데이터를 서로 연결해서 새로운 맥락과 정보를 창조하는 것이에요.
그는 특히 마지막 다섯 개의 별을 강조해요. 정부의 데이터와 또 여러 다른 데이터를 매쉬업(mash up : ‘충분히 으깨다’라는 단어지만 데이터들을 섞어서 내는 시너지까지 포괄하는 단어예요. 팀 버너스 리가 즐겨 썼네요)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죠. 데이터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요.
물론 영국의 정부 데이터 공개 및 재사용 허용에도 한계는 있어요. 품질과 양, 형식 통일 문제, 부서 및 부처별 정보 공유의 어려움 등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죠. 테레사 메이 총리는 이에 대해서 영국의 오픈 데이터 정책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면서 정부에서 공개하는 정보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하며 시민과 사업체, 시민단체, 자원봉사 섹터의 운영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나서서 말했습니다.
팀 버너스 리는 오픈 데이터 운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2012년 The ODI (The Open Data Institute)라는 기관을 만들어 데이터 공개 관련 컨설팅, 데이터 윤리 교육,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 중 다른 국가의 중앙 및 지방 정부에 오픈 정부 컨설팅 서비스도 있습니다. 자국 정부의 데이터 보고(寶庫)를 열어젖혀 국익에 기여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다른 정부에도 자극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구루’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대만 사람들의 감정과 의견을 전부 디지털 마인드맵에 넣고 싶어요”
이제 대만을 한번 살펴볼까요? 또 다른 걸출한 인물 오드리 탕이 보입니다. 인터넷과 정치의 접점에 서있는 ‘핵티비스트(해커+활동가)’였는데요. 지금은 대만 정부의 ‘디지털 총괄 정무위원’입니다. 2016년 대만 정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임명했어요.
오드리 탕은 “15세에 학교에서 자퇴를 하고 웹을 탐험했습니다. 인터넷이요. 그때 ‘인터넷 소사이어티’라는 커뮤니티에서 ‘급진적으로 투명한 거버넌스’ 개념을 봤어요. 정치를 배우기 전, 아니 투표권을 가지기도 전에 제가 최초로 마주한 민주주의의 모습이었어요”라며 “지금 하는 일은 그때 배운 것을 대만 정부에 적용해보는 것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가능할까?’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런데 오드리 탕은 역시나, 정무위원으로 임명되기 전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했어요. ‘기술은 기술, 실행은 실행, 추구하는 가치는 가치’를 따로 보고, 효과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죠.
2012년 오픈소스 진영 개발자들과 함께 ‘거브 제로’를 만들었어요. gov의 o를 0으로 바꿔, 사이트로 만든 ‘그림자 정부’였죠. 디지털의 0과 1을 상징하면서 전통적인 정부와 다르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기도 하고요. 어떤 정책에 의문을 가지고 반대하고자 하는 시민이 0부터 정책을 만들어간다는 뜻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예산 관련 거브 제로는 PDF 파일 500페이지에 달하는 데이터를 시각화해서 공개했죠. 주제별 예산 항목을 볼 수 있고 이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열어뒀어요. 정부 행정 사이트에도 반영됐죠.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힘을 얻은 것은 오드리 탕이 2014년 선플라워 운동에 참여한 뒤였어요. 대만 국회의원이 제대로 심의하지 않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중국과의 무역협정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반발한 운동이었죠. 시민 50만명이 국회를 점거했어요. 오드리 탕은 거브 제로를 거점 삼아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 NGO 20곳과 함께했고, 이후 운동 과정을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운동은 끝났지만 오드리 탕에게는 시작이었어요. 그는 ‘이제 정부가 판을 까는 것이 아니고 시민들이 온라인 공간의 해시태그, 의견 나눔을 통해 어젠다 셋팅을 한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이해관계자를 모아 위원회를 여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선플라워 운동에서 가능성을 보았죠. 따라서 거브 제로의 확장을 구상하게 됐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크라우드 로(Crowd Law)’예요.
오드리 탕은 선플라워 운동 참여자들을 크라우드 로로 불러들여서 운동이 어땠는지 감정을 공유하도록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집단화를 했고,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디지털 실험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죠. 그동안 크라우드 로는 ‘감정 공유’를 포함해 시민이 네 가지 방법으로 정책을 심의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만에서 우버엑스 서비스가 논란이 되자 시민의 의견을 빠르게 모으고 정부가 이해관계자와 위원회를 열 수 있도록 만든 프로젝트예요. 2015년 크라우드 로에서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공론장 POL.IS를 만들었어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가 온라인에 올리는 모든 텍스트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는데요. POL.IS는 이 기술을 이용해 시민들이 우버엑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이었죠.
결과를 보니 시민들은 서비스에 대한 찬성, 반대로 의견이 나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우버엑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흥미로워했다고 해요.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이해관계자를 모아 합의를 이끌어냈으면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요. 그래서 우버, 로비스트, 관련 정부 부처가 모여서 회의를 했죠. 오드리 탕은 물론 여기에도 참석해서 회의 내용 전체를 녹화하고 기록해서 온라인에 올려뒀습니다. 그는 참여자들이 정부 사안이나 정책 결정에 있어서 본인을 나타내는 주요 아이덴티티로 ‘감정’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해요.
오드리 탕은 정계에 진출한 2016년, 본인의 일도 대중에 완전히 공개하기 위해 새로운 온라인 공간 ‘Public Digital Innovation Space(PDIS)’을 열었어요. 참여하는 모든 회의 기록을 풀 스크립트로 2주안에 온라인에 올리고요. 관련 질의답변은 완전히 공개됩니다.
오드리 탕은 정부에 들어오면서 어차피 계약도 맺지 않았고, 관에서 내가 어디있는지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구했으며, 본 것은 전부 릴리즈하겠다고 공표했다고 해요. 극단적으로 투명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직접 뛰어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영국의 팀 버너스 리, 대만의 오드리 탕이 정부기술, 특히 정부 데이터 공개와 쓰임새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살펴봤어요. 한국 정부도 2013년 공공데이터 촉진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고 누구나 무료로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개방,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했어요. 2019년 3월 28일 파일데이터 기준으로 25,692건이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됐는데요.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형태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대화가 필요합니다.
팀 버너스 리와 오드리 탕의 리더십을 보면서, 공개하는 것 자체보다 사람들이 어떤 공공데이터에 얼만큼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활용해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컨센서스를 도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글에서는 블록체인 정부 에스토니아의 이야기를 다뤄볼게요.
*참고자료
-영상: 팀 버너스 리 ‘오픈 데이터를 세계화하는 해를 만들자' TED 토크
-영상: ODI 서밋 2013 : 파이어챗 세션 (팀 버너스 리, 나이젤 샤볼트, 베스 노벡, 빌 톰슨)
-가디언 기사: Give Us Back Our Crown Jewels
-가디언 기사: Report Backs Freer Use of Data
-위키피디아: Open Data in the United Kingdom
-영상: Taiwan: Digital Minister Audrey Tang
-대만의 Digital Government Promotion
-블로터 기사: ‘행동하는 시빅해커' 오드리 탕, 대만을 바꾸다
-와이어드 기사: Taiwan’s Revolutionary Hackers are Forking the Government
*해외 정부기술 개선 사례 시리즈
[해외 정부기술 개선 사례 1] 백악관의 디지털 기술 엘리트 조직은 어떻게 운영될까? |
정리 |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이미지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
'Techn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임감 있게 화내기 위해 시빅해킹을 합니다” (0) | 2019.07.04 |
---|---|
38명의 아시아 시빅해커 민주주의를 말하다 (0) | 2019.06.20 |
“적어도 공적 지원으로 만든 학술 저작물은 ‘오픈 액세스’ 합시다” (0) | 2019.04.10 |
발틱의 호랑이에서 블록체인 도입 선두주자로, 에스토니아 정부 (0) | 2019.04.01 |
백악관의 디지털 기술 엘리트 조직은 어떻게 운영될까? (0) | 2019.03.25 |
젠더 폭력에 맞서는 기술 (0) | 2019.03.06 |
아웃도어 브랜드가 웬 오픈소스? (4) | 2019.02.08 |
신뢰 기술이 뭐길래 (0) | 2019.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