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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

“적어도 공적 지원으로 만든 학술 저작물은 ‘오픈 액세스’ 합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지식을 폭발적으로 생산, 소비, 유통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덕분이죠. 동시에 꼭 학자가 아니라도 많은 시민들이 높은 수준의 지식을 향유하면서 사회를 좀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어요. 누구나 무료로 학술 저작물을 활용(읽기, 내려받기, 복제, 배포, 탐색, 재사용)하기 좋은 환경이 됐죠.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운동 이야기입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진보넷은 진보운동의 독자적인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웹서비스를 개발하고 정보인권 정책을 생산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예요. 오 대표는 진보넷 대표가 되기 전 오픈 액세스 운동을 지지하는 정보공유연대 대표를 맡았습니다.

 

오픈 액세스 운동은 학술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걸쳐 ‘연구성과물을 공개(오픈)해서 접근(액세스)하기 쉽게 만들자’는 캠페인이에요. 학술 저작물을 더 활발하게 출판해서 퍼뜨리고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지를 만들어서 사회에 임팩트를 주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죠. 슬로워크가 관심을 가질만 하죠?

 

“자 잠시만요. 오…픈액세…스…, 학술…커뮤니케이…션…”

 

하, 저도 처음 접했을 때 알 수 없는 단어와 복잡한 관계 때문에 머리가 핑, 눈물이 핑이었답니다. 그래서 2018년 11월 정보공유연대 주최로 열린 ‘[원탁포럼] 국내 지식 공유지 구축 방안-오픈 액세스를 중심으로’ 행사에 다녀왔고 얼마 전엔 오 대표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 내용을 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기 위해 ‘누가’, ‘무엇을’을 먼저 보여드릴게요.

 

누가누가 있나요?

 

국내 학술 커뮤니케이션 환경, 이미지 출처: 정경희 한성대학교 도서관정보문화 디지털인문정보학 교수

원탁포럼에서 정경희 교수가 그림을 통해 각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었어요.

 

-연구단계에서는 연구자들이 성과를 논문으로 만드는데요. 중요한 건 역시 돈이죠! 개인적으로 연구비를 마련하거나, 주로 한국연구재단의 공공기금, 학교 연구비를 받아서 완성합니다.

 

-출판단계에서는 국내 비영리 학회가 연구자들의 논문을 실어서 약 4천개의 학술지를 출판했어요. 피어리뷰까지 무료로 합니다. 해외는 좀 다른데요. 영미권의 경우 영리 출판사가 출판하고, 비영리 출판사는 오픈 액세스 출판사 중 일부로,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유통단계에서 상용 데이터베이스(이하 DB), 공공 DB, 도서관이 학술지를 유통해요. 일반 책하고 다르게 회원제(정기 구독)나 도서관 위주로 퍼지죠. 해외에서는 출판사가 논문을 DB로 만들어서 유통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또 좀 다르더라고요. 아까 말했듯이 출판과 편집은 학회(비영리)에서 하고 DB 회사는 유통만 해요. 누리미디어의 DBpia가 대표적인데요. 학회와 개별 라이선스(저작권 계약)를 체결해서 자사 DB에 넣고 검색 기능을 붙였어요.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라고 부릅니다.

 

*주요 상용 DB: KISS, DBpia(누리미디어), 교보스콜라, E-article, 뉴논문

*공공 DB: KISTI, Synapse, Science Central

 

-이용단계에서는 논문을 봐야하는 사람들 중 학술연구자는 도서관에서 번들로 보거나, 학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개별적으로 봐요.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주인공 라이언 박사는 미항공우주국(NASA)가 쓸 만한 기술을 개발해서, 이를 설치하기 위해 미국의 우주 기지로 옵니다. 영화 첫 부분의 대화 중 박사가 “NASA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자금을 대줘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대단한 기술을 발명해도 연구비를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깊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역시 돈 걱정은 끝이 없고…, 이미지 출처: 워너브러더스, imdb

쟁점은 무엇일까요?

 

오병일 대표는 상용 DB의 가격이 너무 높고, 또 매년 높이고 있다는 점을 주요 쟁점으로 꼽습니다. 도서관들은 학술지 가격이 억대고, 수수료도 붙는 한편 공공기금으로 연구된 학술저작물까지 번들로 사들여야 하고 매년 10%씩 가격을 올려서 부담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해외에서 오픈 액세스 운동이 일어난 계기와 같아요. 냉전시대 정책적으로 과학, 기술에 투자 지원이 늘었고 따라서 대학 연구비도 급증했어요. 대학 부서들은 이에 발맞춰 학술저작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냈고 급기야 기존 학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규모를 넘어섰죠. 그러니 영리 출판사가 나서서 출판, 편집, DB까지 제공하게 됐고요. 그런데 80년대 중반 이후 물가가 갑자기 치솟아서 출판사들이 학술저작물 가격을 같이 올렸고, 도서관들이 부담스러워하면서 구독하는 학술지가 감소했습니다. 곧 다른 학자들이 학술지에 접근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연구가 위축됐죠. 오픈 액세스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오병일 대표

오 대표가 학술저작물 가격 이슈와 연결해서 제기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중지불이에요. 저자가 학술논문의 출판비를 영리 출판사에 한번 지급하고 오픈 액세스 출판을 했는데(상업 출판사와 오픈 액세스 출판을 함께 하는 경우), 도서관이 영리 출판사의 학술지를 번들로 구입할 경우 번들에 포함되는 오픈 액세스 출판 논문에도 또 비용을 지급하게 되니 이중지불 문제가 생깁니다. 오픈 액세스 논문에도 또 지급을 하게 되니 이중지불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오 대표는 오픈 액세스 출판을 한 논문의 경우 도서관에서 구입할 때 비용 지급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용?

 

이미지 출처: DBpia

오 대표는 누리미디어의 DBpia가 지금처럼 논문을 잘 모으고(200만건을 모았대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을 잘 설계해서 이용자에게 부가가치를 줄 수 있다면 그대로 사업해도 관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공공기관의 DB인 디콜렉션이나 NDSL의 사용성이 DBpia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도 인정해요. 관료제의 한계라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상용 DB가 자발적인 운동인 오픈 액세스 운동을 막고 배타적으로 사업을 운영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해요. 학술 커뮤니케이션 생태계를 존중한다면 저작자들이 학술저작물의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고려해야 하고 도서관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오픈 액세스 학술 저작물과 DB가 확대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서 학술 생태계를 융성하게 만드는 데 함께 기여하고요.

 

오병일 대표 “학술저작물은 널리 읽혀야만 가치가 커집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오 대표는 지식이 힘이 되는 사회에서 학술저작물을 다루는 상용 DB도 논문 유통을 널리 해주는 것이 목표고 사업을 하는 명분이라면 학술 커뮤니케이션 생태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요. 특히 저작자들에게 학술저작물의 가치는 돈으로만 매겨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종신 연구자 또는 종신 교수 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연구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본인의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기대하면서 사회에 임팩트를 주거나 전문적인 인력으로서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오픈 액세스 운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비영리 학회가 학술저작물을 출판하기 때문에 공적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혜택도 일반 시민이 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말이죠. 최소한 공공기금으로 만들어진 학술저작물은 오픈 액세스 운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여기까지 오픈 액세스 운동을 정말정말 간단히 살펴봤어요. 전문적인 이야기였는데요. ‘적어도 공공지원을 받은 학술저작물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활용(읽기, 내려받기, 복제, 배포, 탐색,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자는 것이 요지인 것 같아요. 오병일 대표의 이야기를 Q&A 형식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대표님은 오픈 액세스 운동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셨나요?

 

1998년부터 정보공유연대에서 지적재산권 이슈를 공부하고 관련 행사를 주최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오픈 액세스는 그 중 일부고요. 저작권 중에서도 학술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해서 연구한 것이죠.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는 기존 학술저작물 저작권이 디지털 특성과 충돌하면서 지식 향유와 문화 융성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왜 공유해야 할까요?

 

단적으로 지식은 나누면 널리 퍼지고 확장하잖아요. 형체가 있는 물건은 사라지지만요. 따라서 지식을 공유할수록 사회적으로는 이익이죠. 디지털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학술저작물의 경우 비영리로 지식 공간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봐요.

저작권 체계와 연관을 지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작권’이 근대 이후 만들어진 개념이잖아요. 저작자가 더이상 귀족의 후원에 매달릴 수 없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복제나 무분별한 인쇄를 막으려고 저작권을 만든 것이죠. 하지만 디지털은 복제를 막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오픈 액세스 운동을 통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와 국내에서 오픈 액세스 운동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해외에서는 출판사가 학술지를 내고 DB도 제공해요. 국내에서는 학회가 출판하고 상용 DB가 유통합니다. 저는 이 때문에 한국에서 오픈 액세스 운동이 필요하고, 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학회가 비영리이다 보니 이미 공적자금과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물이 많으니까요.

 

국내 오픈 액세스 운동, 과제는 무엇일까요?

 

정부와 학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해외에서의 예시를 참고로 해서 공적 자금으로 학술저작물이 활발하게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오픈 액세스 운동을 지원하고, 학회는 학술지를 오픈 액세스로 출판할 수 있도록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공적 지원을 받은 학술 연구의 경우 오픈 액세스로 출판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올해 정보공유연대가 국회를 통해 제안할 예정이에요.

 

*참고자료

 

-The Open Access Initiative: A New Paradigm for Scholarly Communications

-위키백과: 오픈 액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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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