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am Slowalk

슬로워크를 시작한 이유들

왜 사회를 혁신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일자리 모델을 선택했을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일하는데 기술이 가지는 중요함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정부와 여러 기관들이 가진 디자인과 기술 역량은 조직 내에 충분히 내재화 되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사회혁신영역(소셜섹터)의 기술 역량 강화 문제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의 전문가들이 안정된 일자리라는 터전 위에서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갖추어져야 해요. 슬로워크(혹은 UFOfactory)를 시작할 때 제가 내렸던 주요한 결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정기 뉴스레터를 보낼 때 대부분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했습니다. 첫째 젊은 상근자가 어떻게든 만들거나,  둘째 주변 개발자나 디자이너 친구 또는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하거나, 마지막 셋째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운 단체의 경우 개발이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인력을 한 명 채용했지요. 

저 역시도 ‘홈페이지가 갑자기 안 되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이어지다가, ‘단체에 들어와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의 전담인력은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 크게 지쳐 조직을 떠납니다. 가치 중심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조직에서 기술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기도 어려운 데다 스스로의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기술 전문성이 없는 활동가가 어쩔 수 없이 뉴스레터, 웹자보, 홈페이지를 다루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일을 두 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엔 고장난 컴퓨터 혹은 인터넷 망을 고치는 일도 했어요. 요즘에는 어떤가요. 영상까지 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는 기술(디자인, 테크놀로지, 글쓰기 등) 전문가가 따로 모여서 전문성을 키우고, 이들이 활동가 조직과 만나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섹터 내에서 외롭게 지내왔던 전문가들이, 활동과 기술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키우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싶었습니다. 사회 문제나 아젠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도 소셜섹터를 접하면서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가는 환경을 만들어 내길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을 적어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반 기업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슬로워크는 지금까지 1,200개 이상의 기관들과, 수백 개의 브랜드, 캠페인, 웹사이트(홈페이지 플랫폼 포함)을 만들었습니다. 소셜섹터 안에 기술과 디자인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야 섹터의 역량도 한 뼘 더 성장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올라가며, 일을 하려는 전문가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더 많은 전문가가 더 많은 활동가와 함께 사회를 혁신하는 임팩트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소셜섹터 전체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슬로워크 같은 조직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 | 슬로워크 CEO 권오현(시스)
(이 글은 시스의 개인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